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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앨범

김삿갓과 함께한 영월 마대산 산행

산행지: 영월 마대산 

산행일:2025년 11월29일 토요일

함께한 사람:도방과 함께

산행시간:10:00분 출발~14시30분 도착(4시간30분 소요)

마대산 등산 안내도

다녀온길:김삿갓문학관 주차장~김삿갓 유적지~김삿갓 주거지~마대산~전망대~작은마대산~처녀봉~김삿갓묘소~주차장 원점회귀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

마대산의 산행은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와 경계인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사이의 어둔이골 입구인 노루목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많이 알려진 코스이다.충북 단양의 베틀재에서 시작하여 마대산에 오르는 길, 와석송어장 뒤편의 드렁골 에서 처녀봉으로 오르는 길, 영월군 김삿갓면 대야리에서 마대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나 등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아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노루목교를 건너
김삿갓 유적지 방향으로
김삿갓 유적지

 김삿갓 유적지에는 김삿갓 주거지와 김삿갓 묘가 있으며 마대산 들머리다. 김삿갓이 방랑하며 남긴 ‘향수’ ‘꼬마신랑’ ‘환갑’ 등을 새긴 시비와 조형물을 지나면 김삿갓 묘 갈림길이 나오는데 하산 길에 김삿갓 묘를 보기로 하고 우리는 김삿갓 주거지(1.8㎞)·마대산 방향으로 향한다.

 

김삿갓면 표지판을 따라 김삿갓 주거지 방향으로

강원도 영월군은 유난히 ‘면(面)’의 지명이 많이 바뀌었다. 하동면은 김삿갓면, 신천면은 한반도면, 수주면은 무릉도원면으로 개명했다. 한반도면은 지형이 우리나라의 한반도와 꼭 닮은 데서, 무릉도원면은 ‘이상향’ ‘별천지’를 뜻하는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할 정도로 자연이 아름다워서다.하지만 김삿갓면은 방랑시인으로 알려진 김삿갓으로 인해 면의 지명이 변경됐다. 사람의 이름이나 별칭으로 면의 지명이 변경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김삿갓면이 최초이지 싶다.

 

처녀봉 갈림길에서 어둔골,김삿갓 거주지로

산행을 시작하여 조금 오르다보면 어둔이계곡과 선락골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길림길에서 어둔이계곡 방향으로 좌측길을 선택하여 가면 난고 김삿갓의 옛 주거지가 나오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처녀봉이 나온다. 우리는 어둔이골 등산로로 해서 선락골로 하산 코스를 정해 산행을 시작한다.

 

어두운 골짜기를 뜻하는 어둔골 갈림길
복원된 김삿갓 생가에서 "마대산"으로

난고 김병연(1807~1863)은 이름보다는 항상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으로 더욱 유명하다. 김삿갓이 유년기를 보낸 주거지에 도착한다. 현재 방과 대청마루 부엌이 전부인 세 칸의 초가집이 복원돼 있다. 마대산은 김삿갓의 초상화가 걸린 ‘난고당’ 왼쪽으로 길이 나 있다. 

 

등산로 안내판 갈림길에 도착. 쉼터에서 잠시 휴식(좌측 등산로는 폐쇄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난고 김병연)이 머물렀던 이곳은,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산책하며 그의 시와 삶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다.  의자에 앉자 잠시 쉬어가며, 김삿갓의 자유로운 영혼을 느껴보자!

 

88계단

이제까지의 등산로가 완만했다면 이계단을 시작으로 정상까지 거의 깔딱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철재 계단은 앞으로 3개나 더 설치 되여져 있다.

 

47계단
아름드리 소나무를 바라보며 마대산 정상으로
46계단
45계단

김삿갓의 시를 음미하며 마대산 산행을 해보자. 김삿갓의 한시에서  마음에 와 닿는 시 ‘간산(看山)’의 첫 문장인 ‘권마간산호(倦馬看山好)’ ‘게으른 말을 타야 빨리 안가서 산구경하기 좋다’는 뜻으로 산에서는 모두 게으른 말이 되어야겠다.

 

올해 첫 눈길 산행이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폐쇄된 등산로 갈림길 이정표
갈림길 이정표에서 마대산으로(마대산 산행후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처녀봉으로)
마대산(馬垈山·1050.2m)

마대산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과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의 해발 1,052m의 산으로 고려시대에 마장이 있는 역이 있었기에 주변에 말을 키우는 곳이 많아 마대산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멀리서보면 산의 형상이 말등과 같아 마대산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함께한 친구 도방
마대산 정상 산행후 갈림길로 되돌아와 처녀봉으로

전망대로 오르기전
전망대에서 (마대산은 조망 터지는 곳이 얼마 없다. 처녀봉 직전에 전망대가 나오는데, 여기서 그나마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마대산은 항상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에 의해 알려졌다. 마대산 정상에서 처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유일한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보면 백두대간의 선달산에서 늦은목이재 마구령 고치령을 지나 소백산 능선이 하늘금을 긋는다.

 

작은마대산 아래 이정표
작은마대산 (마대산 산행중 이곳이 그래도 제일 조망이 뛰어난곳이 아닌가 싶다.)
처녀봉 가기전 이정표(처녀봉 0.2Km 소요시간 10분정도)
처녀봉(944.1m)

이곳이 왜??? 처녀봉인지 어원을 모르겠다. 흔히 처녀봉(처處女峯)이라 함은 아지까지 인간이 발이 닿지 않은 산봉우리, 사람이 오르기 매우 어렵거나 접근 자체가 쉽지않은 봉우리 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정복봉우리들을 의미하는데 이 조건을 갖춘것은 하나도 없는데  왜 처녀봉일까??? 

함께한친구 "도방"
처녀봉에서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중 뒤돌아본 마대산
선낙골로 향하는 폐쇄된 등산로를 지나
가파르게 내려가는 하산로

처녀봉에서 김삿갓묘가 있는 초입까지 내려오는 하산길 등산로가 꽤 가팔랐다. 해발고도 1,000m대 산 답게 난이도가 있다. 낙엽이 깔린 등산로는 자칫잘못하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찔수 있다. 온 신경을 발끝에 두고 하산한다.

 

처녀봉 선낙골 갈림길
콘크리트 포장조로를 따라 김삿갓 유적지로
마대산 선낙골 와폭
어둔골과 선낙골 합수점
홀로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김삿갓

김삿갓이란 이름은 그가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이름을 물을 때, "김립(金笠)", 바로 말해 김삿갓이라 대답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김병연이 '김삿갓'이 된 직접적 원인은 그의 할아버지인 무신 김익순(1764 ~ 1812)때문이다.     야사에 따르면 그가 성장하여 16세가 되었을 때, 과거를 본 적이 있다고 하며  해당 과거 는 중앙에서 임금이 주재하는 대과가 아니라 거주하는 지역의 지방관이 주재하는 "향시"로 대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봐야 할 시험이었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 날의 시제가 김익순을 노박하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김익순의 잘못을 이리저리 적어 제출하였다. 그 때 썼다는 시에 따르면 "선대왕이 보고 계시니 넌 구천에도 못 가며,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라. 네 치욕은 우리 동국 역사에 길이 웃음거리로 남으리라"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급제해서 즐겁게 돌아와서 자랑하다가 어머니에게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는데… 하필이면 문제에 나온 그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였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화병으로 죽게 할 정도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 전국구 역적인데다 자신은 그 비밀도 모르고 얼씨구나하고 자기 할아버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답안지를 적어낸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김병연은 무려 4년간 폐인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다가 20살 되던 해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김삿갓 무덤

 난고(蘭皐) 김삿갓 (金炳淵)의 생애: 선생은 안동 김씨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宣平)'의 후예로 선조7년(1807년)3월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부(父)'안근(安根)'과 모(母)'함평 이씨(李氏)'사이에서 이남(二藍)으로 출생 하였고 본명은 '병연 (炳淵)'이고 호는 ' 난고(蘭皐)'이다. 1863년 전라남도 화순군동복에서 작고하여 그곳에 묘를 썻으나,삼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모셨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 조성된 김삿갓 문학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과 단양군 영춘면에 걸쳐 있는 마대산은 김삿갓문학관 원점회귀 산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삿갓을 쓰고 팔도를 떠돌며 시를 짓고 방랑생활을 했던 김삿갓 김병연의 생가 터와 묘역을 문학관으로 잘 조성해 놓았다.김삿갓의 생애를 살펴보며 김삿갓과 함께 마대산에 올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