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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현충사 방문기

 

여행일:2023년11월4일 토요일

여행지: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그리고 현충사

함께한사람 :나홀로 여행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충남 아산시 곡교천 은행나무길에 가을 나들이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염치읍 곡교천을 따라 조성된 은행나무길은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로 선정된 명소로, 45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곡교천 충무교부터 현충사 입구까지 2.2㎞ 구간에 펼쳐져 있다.

 

 

푸드트럭과 특산품을 파는 곳이 나오면서 은행나무길이 시작된다.

유명세 탓인가  많은 관광객이 모여 들면서 주차장도 복잡하다.주차장은 1. 2주차장과 공영주차장등이  있지만  차량 주차 하기가 복잡하다. 나는 '충청남도 경제 진흥원'에 운좋게 내가 들어가자 나가는 차량이 있어 그곳에 주차시키고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 길을 걸어본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가을이 깊어지면서 거리의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고 은행나무도  노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노랗게 물든 아름다운 은행나무 길을 기대하고 왔지만 생각보다 노란은행나무가 덜하고  초록빛 은행나무가 많이 보이지만 그런대로 노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져  멋짐을 뽐내면서 관광객을 맞이 하고 있다.

 

 

추억을 만드는곳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아산 은행나무길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간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길에 1973년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만들어졌다. 수령 50년이 넘는 은행나무들이 노란색으로 변하며 계절을 바꾸고 있다.

 

 

어떤 관광객이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노란 단풍잎으로 만들어 놓은 하트 모양도 포토죤으로 최고의 명당자리이다

도시의 여인은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로수로 단풍을 만난다. 가을인 것이다. 단풍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꿈 많은 소녀의 책갈피에 끼워진 단풍은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소년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가 있다. 비에 젖은 후줄근한 단풍잎에서는 고개 숙인 장년의 서글픔을 읽게 되고, 청소부의 빗자루 끝에 이끌려 쓰레기통으로 미련 없이 들어가 버리는 도시의 단풍잎에서는 노년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자기만이 갖는 단풍의 느낌이 있기 마련이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을 걸으며

곡교천의 휴일은 바쁜 일상이 잠시 멈춰진 세상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은행나무 길을 걸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연인들,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가족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청명한 가을 하늘과 황금물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은행나무길에서 바라본 곡교천 백일홍
은행나무길에서 바라본 곡교천 댑싸리

곡교천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 은행나무와 함께 길옆 곡교천 변에 조성된 계절 꽃 정원은 봄·여름·가을·겨울마다 형형색색 다른 옷을 갈아입으며 장관을 연출한다. 그 사이로 나 있는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가로지르면 상쾌한 바람과 싱그러운 자연경관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로 선정된 아산의 명소

‘만추(晩秋)의 계절’ 11월에 접어들면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로 황금빛 터널을 이룬 충남 아산시 곡교천 은행나무길에 가을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은행나무가 일제히 노란빛을 내는 가을이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곡교천( 曲橋川) :충청남도 천안시아산시를 서류하여 무한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강.

상류 지역에서는 고분다리천으로 불리다가 염치읍 곡교리에 이르러서 곡교천이라 불린다. 곡교천 또는 고분다리천이라고 하는 명칭은 강의 곡류가 심하다는 뜻과 섭나무[薪]로 다리를 만들 때, 다리의 중력을 높이기 위해 아치형으로 위로 굽게 만든 다리라는 뜻이다.

 

 

역사와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곡교천

곡교천이 위치한 이곳은 아산의 대표적인 은행나무길 축제와 성웅 이순신 축제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은 물길따라 역사와 자연이 아름다운 곡교천이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에서

넓은 나뭇잎은 햇빛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가장 흔한 초록 색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색소도 준비해둔다. 단풍나무의 붉은색과  은행나무의노란색, 참나무처럼 갈색, 또는 서로 색깔이 섞여 있는 갖가지 단풍이 가을 숲을 장식한다. 동시에 줄기로부터 공급받던 수분과 양분은 잎자루 밑의 떨켜가 생기면서 차단되어 버린다. 잎을 떨쳐내기 위한 준비인 것이다. 이는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이듬해 봄에 잎의 세대교체를 위하여 나무들이 선택한 전략이다.

 

 

곡교천 코스모스
곡교천 댑싸리
곡교천 백일홍

곡교천은 아산시 염치읍 곡교리 앞을 흘러 인주면 대음리 삽교천에 합류하는 풍광이 아름다운 하천이다. 곡교천 둔치는 계절마다 봄이면 유채꽃,가을이면 코스모스와 국화, 백일홍,댑싸리등 아름다운 꽃들이 꽃길을 이루고 있는곳이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이 노란 황금물결로 물들어 가고있다.

가을철 날씨가 추워지면서 무성했던 나뭇잎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떨어진 나뭇잎이 바닥에 뒹굴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이면 우리네 마음도 덩달아 쓸쓸해진다.시인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낙엽이 지는 것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낙엽이 져야 이듬해 봄 나무는 새싹을 기약할 수 있다. 만약 연한 잎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에도 가지에 붙어있다면 나무는 부분적으로 ‘동상’에 걸릴 것이다. 낙엽은 오랜 세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나무가 선택한 생존전략이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을 걸으며

아산시에 따르면  내년에는 은행나무길 주변에 이순신 관광 체험센터가 조성될 예정 이라고 하니 역사와 문화, 체험의 즐거움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관광명소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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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현재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 관리소가 관리 및 운영을 하고 있으며 전 국민 무료 입장이다. 

현충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영정을 모신 사당(祠堂)이자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사당.

1967년 사적 제155호 '아산(牙山) 이충무공 유허(李 忠武公遺虛)'로 지정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현충사로 잘 알려져 있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1598년에 충무공 이순신이 노량 해전에서 전사(戰死)하게 되면서 1706년(숙종 32년)에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의 숭고한 호국 정신과 애민 정신을 기리자는 뜻에서 사당을 세울 것을 조선 조정에 건의하였다. 이듬해인 1707년 숙종의 어명하에 지금의 아산에 있는 이순신의 생가에 충무공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기리고 나타낸다는 뜻에서 '현충(顯忠)' 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워지게 되었고 이후에는 충무공의 공로와 업적을 기리는 성역(聖域)으로 거듭났다. 참고로 '현충사(顯忠祠)'라는 현판은 숙종이 직접 내린 것으로 구 현충사에 걸려있다.

 

 

현충사를 포함해 이 일대는 아산 충무공 유허지(遺墟地)로 통칭하고, 그곳에서 북쪽으로 9㎞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이충무공묘가 있다.

유허지(遺墟地)란 세월은 가도 그 자취가 남아 있는 터를 의미한다. 

 

 

단풍나무 아래서

단풍나무 아래서

詩 / 이해인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다 문득 그가 보고 싶을 적엔 단풍나무 아래로 오세요.

마음속에 가득 찬 말들이 잘 표현되지 않아 안타까울 때도 단풍나무 아래로 오세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세상과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저절로 기도가 되는 단풍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면 행복합니다.

별을 닳은 단풍잎들의 황홀한 웃음에 취해 남은 세월 모두가 사랑으로 물드는 기쁨이여.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유물들과 임진왜란이 발생했엇던 당시 해전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더불어 전시 및 교육을 위해 건설하게된 역사테마관이다.전시관과  교육관, 사무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물이다. 아쉽게도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은 2023년 9월11일~2024년 2월까지 임시휴관으로 전시관은 돌아볼수 없었다.  

 

 

어린이 활쏘기 체험장
충무문(忠武門)

아산 현충사는 잘 관리되여져 있다. 경건하면서도 아늑하고 고즈넉하고 사람을 품어주는 기운이 은은하게 스며 있는듯 하다.충무문 忠武門) 은 현충사 본전으로 가는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한옥 모습의 문으로 1967년 현충사 성역화 지시에 따라 세워진 관문이다.

 

 

정려( 旌閭)

정려란 충신,효자,열녀에게 임금이 편액을 내려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겅어두는 것을 말한다. 현충사에 있는 걸린 정려는 이충무공과 그의 후손 등 다섯 분의 충신.효자 편액이며 전각에 일렬로 걸려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연못

정려( 旌閭)앞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연못, 쉼터가 있어 잠시 멍 때리며 쉬어 갈수가 있다. 일상에서 찌든 삶을 이곳 현충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리며 잠시 쉬어 갈수 있는 곳으로 추천해봄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셋째아들 이면 공 묘소(李勉公墓)

이면은 선조10년(1577)에 아산에서 태어나 선조30년(1597) 일본군과 싸우다 21살의 나이로 전사하였다.전사한지 220여년 뒤인 정조20년 (1796)이조 참의의 벼슬을 받았다. 이면공이 전사할 당시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전장에 있었으나 이면 공은 정유재란 때 어머니를 피신시키고 일본군에 맞서다 돌아가셨다. 명량 해전이 끝난 후 수군을 정비하시던 이순신 장군께는 편지로 이면 공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이순신 장군께서는 최고 사령관이라는 지위로 부하들 앞에서 슬픔을 감추실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면 공과 이순신 장군님을 다른 곳에 묻히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고 계신 몇몇 분들이 끝내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뵙지 못한 이면 공을 위해 이순신 장군님의 모습이 있는 백원 주화를 두고 가신다고한다.

 

 

나라 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현충사'

본래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은 오늘날의 서울시이다서울시 중구 건청동(현재 서울시 중구 인현동 부근)에서 태어난 이순신 장군은 어린 시절 서울을 떠나 외가가 있는 충청남도 아산으로 내려왔다그리고 현충사 부근의 외가에서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무예를 연마하며 머물렀다고 한다.

 

 

현충사 단풍길을 걸으며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곳으로 1932년 민족 성금으로 고쳐 지은 구 현충사를 옮기고  1967년에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통해 준공된 콘크리트 한옥 건물이다.  매년 4월28일에 이충무공탄신 기념다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장인,장모 묘

이무덤은 충무공 이순신의 장인.장모인 방진(方震)과 남양홍씨(南陽洪氏)의 무덤이다. 방진은 전라도 보성군수(寶城郡守)를 지냈다. 현재 이순신 종가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후손 묘(後孫 墓)

후손 묘는 충무공 이순신의 3대,4대,8대,10대손의 묘이다. 이순신의 묘소는 이곳으로 부터 서북쪽 으로 약 9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아라산)에 자리하고 있다.

 

 

충청남도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수종:은행나무(2본)   ●지정번호:8-94  ●지정일자:1982년11월10일  ●수고:20m, 22m  ●수령:약 570년  ●나무둘레:400 (cm)  ●관리자:현충사  ●소재지: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산61

 

 

충청남도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충무공 고택 옆에 자리한 이 두 그루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살이 넘은 것이다. 이 충무공이 결혼 후 이곳 활터에서 말을 달리며 무예를 연마하던 모습,그리고 장군께서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운구가 이 집 앞으 지나 장지로 가는 모습 까지 지켜 보았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이 온 나무를 덮어 노란 우산 두개를 펼쳐놓은 듯한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두 그루 모두 암나무로 해마다 많은 은행이 열린다.

 

 

활터

이 활터와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 능선은 충무공 이순신이 활을 쏘고 말을 달리던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전통활쏘기 체험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택(故宅)

충무공이 무과 시험을 보던 시절부터 살아온 집으로 원래는 충무공의 부인(성주 방씨)이 살던 집이었는데 충무공이 데릴사위로 오게 되면서 사실상 충무공의 집으로 바뀌었고 이후 종손이 대대로 1960년대까지 살았던 곳이다. 400여년간 종손들이 살면서 부분적으로 늘려 짓거나 고쳐 지었으며, 집 뒤편에는 이순신의 위패를 모신 가묘가 있다. 매년 이순신이 전사한 날인 음력11월1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무정(忠武井) :충무정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가족,그리고 후손들이 1960년대까지 쓰던 우물이다.

충무공과 가족들이 고택에 살던 시절에 사용했던 우물가로 원래는 이름이 없는 우물가였으나 충무공이 전사하고 '충무(忠武)' 라는 시호(屍號)가 내려지면서 그의 시호를 본따 충무정이라 불렀다. 현재는 관람객들의 식수터로 사용하고 있다.

 

 

현충사 본전(本殿)

1967년 현충사 성역화에 따라 확장이전하여 신축된 콘크리트 건물로 안에는 충무공의 영정과 조선시대 때 사용했던 영기(令旗)가 보존되어 있다. 옛 본전 위의 자리에 지금의 본전을 신축하여 넓고 웅장한 모습으로 갖추게 되었다. 옥의 티가 있다면 사당의 기능을 하는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짓는 것이 보통이나 새로 만든 본전은 팔짝지붕이다. 당연하게도 구 본전은 맞배지붕이다.참고로 현재 내걸려 있는 한글 현판은 성역화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현판으로 예전에 걸려있는 현판은 구(舊) 본전에 그대로 존치되어 있다. 舊 본전은 현충사 한켠에 따로 배치되어 있는데 동아일보가 현충사를 새로 중건하며, 숙종이 내려준 현판을 걸고 다시 세운 것이 舊 본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

이순신( 李舜臣),1548년4월28일(음력3월8일) ~1598년12월16일(음력11월19일)은 조선중기의 무신이었다. 본관은 덕수(德水),자는 여해(汝諧),시호는 충무(忠武)였으며, 한성 출신이었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남도수사를 거쳐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임진왜란당시  1598년 (선조31)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셨다.

 

 

충의문(忠義門) :현충사 본전의 정문으로 1932년 현충사 중건 때 세워졌다가 1967년 본전이 확장 이전하게 되면서 새로 개축하여 지어진 관문이다.

내책자를 보니 제목이 ‘아산 이충무공 유허(현충사)와 이충무공묘’라고 돼 있다. 안내책자에는 현충사를 포함해 이 일대는 ‘아산 충무공 유허(遺墟)’로 통칭하고, 그곳에서 북쪽으로 9㎞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이충무공묘’가 있다고 안내돼 있다.  이순신 장군 묘소는 여기 없지라는 생각이 무심코 뇌리에 스쳐지나간다. 당연히 이곳에 있을 거란 생각을 했던 터이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 가장 존경 하는 인물이 누가냐고 고 물어 보면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모르면서도  이순신 장군이라고 적어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나뿐만 아니라 국민학교 시절에는 대부분의 학생이~~) 이순신 장군처럼 널리, 깊이 존경과 사랑을 받는 큰 인물의 묘에 관해 그간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색하고도 아프게 다가왔다. 오늘은 시간상 가서 뵙지못하지만 다음기회에 묘소를 참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홍살문: 본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관문.

홍살문,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은 한국의 전통 대문(大門)으로, 어떤 지역이 신성하거나 구격(具格)이 맞는 장소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지로 세우던 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의 뜻은 직역하면 '붉은 화살 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왕릉과 같은 묘지나 향교, 서원, 궁궐 및 관아 등의 정문으로 설치되었다.

 

 

만추의 계절 현충사 단풍나무 아래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며
현충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우리 겨레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곳 아산 현충사를 걸으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며 나라없는 서러움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며 애국심을 길러본다.

 

 

현충사에는 멋지고 아름다운 반송(盤松) 들이 관람객의 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변종으로 외형은 소나무와 비슷하나 줄기가 밑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옆에서 본 나무의 모양이 부채꼴인 것이 특징이다. 자람이 느리고 수명도 길지 않지만 수형이 아름다워  넓지 않은 공간의 조경수로 적합하다.

 

 

구 현충사(舊 顯忠祠)

1707년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어명하에 따라 최초로 지어진 본전이자 예전에 충무공의 영정을 모셨던 사당. 숙종이 직접 하사한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 현재는 영정이 1967년에 새로 지어진 현재의 본전으로 이전되면서 빈 공간만 남아 보존, 전시되고 있다.과거에는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과 1910년 일제(日帝)의 탄압 등으로 쇠퇴의 기로 및 존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가 1932년 중건되었고 1967년 지금의 본전이 신축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규모에 있어서는 처질지 몰라도 역사성이나 예술성 측면에서는 가치가 확실히 높은 곳이다.

 

 

시몬,너는아느냐! 낙엽 떨어지는순서를

“가까이 오라 /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 /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 바람이 몸에 스민다 /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이다. 

 

 

현충사 주차장 은행나무

나는 어려서 부터 노란색을 좋아했다. 무슨 색깔을 좋아 하느냐고 물어보면 망설일 필요없이 노란색을 선택했다. 국민학교 시절 그림을 그리면 주위 배경색은  무조건 노란색을 칠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란색은 웬지 따드함과 포근함을 느겼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노란색을 보면 쓸쓸함 보다는 포근함이 느껴진다.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젊은시절 지내온 곳 으로 관람하기 편하게 조성되여져 있다. 곡교천 은행나무 길과 연계해서 같이 둘러보면 좋은곳으로 한번 가보시길 꼭!  권장 하면서 곡교청 은행나무길과 현충사 여행길 여기서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