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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앨범

북한산둘레길(왕실묘역길,방학동길,도봉옛길)을 걷다

트레킹 날짜:023년 3월19일 일요일

트레킹코스:북한산 둘레길 (20구간왕실묘역길,19구간 방학동길,18구간 도봉옛길)

걷기친구:나홀로 산악회

북한산 둘레길 안내도

북한산 둘레길은기본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한 산책로로  둘레길은 71.5Km 서울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하여 2010년 9월7일 45,7Km를 개통하고, 2011년6월30일 나머지 25.8Km 구간을 개통,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어 걷는 둘레길은 물길,흙길 ,숲길과 마을길 산책로의 형태의 각각의21가지 테마를 구성한길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보촌하는길,그리고 역사와문화,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길이다.

 

 

다녀온길
우이신설 도시철도역 종착역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왕실묘역길(북한산 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 안내도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끼며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으며 만나는 *왕실 묘역길*
"왕실묘역길" 구간 이정표에서
왕실 묘역길

성종의 맏아들로  중종반정 때 폐왕된 연산군의 묘와 세종대왕의 둘째딸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기여한 정의공주의묘가 있어 왕실묘역길이라 이름지어진 곳이다.귀중한 역사 자료인 왕실묘역뿐 아니라 600년 전부터주민들의 식수로이용되어 온 원당샘과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수령 830년에 달하는 방학동은행나무,연산군묘재실등이 있는 왕실묘역길은 짧은구간이지만 우리의 삶과 이야기를 알차게 담은 역사 문화길이다.

 

 

원당샘 공원

원당샘은 600여년 전 차평윤씨 일가가 자연부락인 원당마을에 정착하면서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었으며 마을 이름을 본떠 "원당샘"으로 명명하게 되어 수백년 동안 생활용수로 공급되었다고 한다."원당샘"은 도봉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수질이 오염되지 않도록 깨끗하게 이용해달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인다 .

 

 

올해처음 만나는 "원당샘공원"의 홍매화
서울 특별시 기념물 제33호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나무의  높이는 25m, 둘레는  10.7m이다. 1968년 나무 형태의 아름다음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서울시 보호수 제1호로 지정하였다.2013년에는 문화재적 가치 등급을 상향 조정하여 기존의 보호수 지정을 해지하고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였다,당시 조사 결과나이는 약 550살로 추정되었다.예로부터 마을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긴 나무로 여러 일화가 전하고 있다.경복궁 증측 당시 징목대상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감나무'라고 불리기도한다. 지금도 방학동 주민들 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나무로 1990년대 말 이후 매년 정월대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왕조 제 10대 왕 연산군묘(燕山君墓)

연산군묘는 조선 10대 연산군(燕山君1476~1506,1494~1506재위)과 거창군 부인 신씨(居昌郡夫人愼氏 1476`1537)의 묘역이다.연산군은 성종(性宗)과 폐비 윤씨(廢妃尹氏)의 아들로 태어나 무오사화, 갑자사화 두 차례의 사화로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반정으로 폐위(1506년,중종1년)되고 이복동생 중종이 왕위에 올랐다.이후 연산군으로 강등되고 강화도로 유배되어 그 해 31세로 세상을 떠났다.1512년(중종7년)부인 신씨가 묘를 강화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여, 중종은 1513년 (중종8년) 왕자의 예에 따라 묘를 옮기고 양주군의 관원이 제사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왕릉 보다는 간소하나 왕자의 묘제에  따라 곡장(曲墻),혼유석(魂遊石), 장면등(長明燈),문석인(文石人), 재실 등이 갖추어져 있다.묘역에 있는 석물들은 조선 전기 능묘 석물의 조형을 볼 수 있다. 연산군 묘 아래쪽에는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義貞宮主 趙氏??~1454)의 묘,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徽順公主 1495~??)와 사위 능양위 구문경(綾陽尉 具文暻)묘로 조성되어져 있다.붓글씨를 잘 쓰고 시를 잘 지어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는 연산군은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폐위된 왕이라서 곧잘 광해군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광해군에 비해서는 업적면에서는 부족하다고 봐야겠지만 묘는 광해군묘보다 더 좋게 조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이 있는 한글역사 문화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이곳은 양효공 안맹담(1415~1462)과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1477)의 무덤으로,서측이 안맹담, 동측이 정의 공주 무덤이다.이들은 1428년에 결혼하여 4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안맹담<본관 죽산(竹山)>은 초서를 잘 써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으며,활쏘기와 말타기에 출중했다. 정의공주는 성품이 총명하고지혜로우며 책력과 산술을 잘 이해했다.안맹담의 시호 양효공(良孝公)의 "양(良)"은 온화하고선량하다는 의미이며,"효(孝)"는어질고 은혜롭게어버이를 섬겻다는 의미이다.불심이 깊었던 정의공주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명복을 빌기위해 1469년*지장보살본원경*(보물제966호)이라는 불경을 간행하기도 했다.무덤 앞에는 안맹담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석등(石燈),문관의 형상을 한 문인석(文人石), 묘 앞에 세우는 비석인 묘갈(墓碣)등이 세워져 있다.

 

 

▼방학동길(북한산 둘레길 19구간)▼

방학동길 안내도
학이 품은 평화로운 마을, 방학동 "방학동길"

방학동이라는 이름은 곡식을 찧는 기구인 방아가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방아골(굴)"에서 유래했다.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방학리(放鶴里)로 고치면서 지금의 방학동이 되었다. 전구간이 숲길로만 이어진 방학동길에서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한 모금 약수로 식히고 갈 수 있는 바가지 약수터와 도봉산 둘레길의 명소이자 유일한 전망대인 쌍둥이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야생 멧돼지 출몰가능지역으로 철조망으로 안전시설을 설치했다
포도밭 이정표
방학동길 이정표에서
바가지 약수터

전 구간이 숲길로만 이어진 방학동길에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한 모금 약수로 식히고 갈 수 있는곳바가지 약수터.  바가지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와 함께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가보도록 하자.

 

 

진달래 꽃을 보니 봄이오는 소리가 들린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진다.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린다. 땅위로 새싹이 올라오려고 용쓰는 소리,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는 소리로 봄이 왔다는 걸 일러준다.땅 밑에서 숨죽이고 있던 잎과 꽃들이 봄기운을 듬뿍 받아  다투어 올라오고있다. 겨울동안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해동되면서 우리의 삶도 더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 봄을 맞이할 채비를 서둘러 준비해야 될것같은 기분이다.

 

방학능선에서

방학능선을 천천히 걸을 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도봉산 주봉도 풍치를 자랑하며 걷는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북한산 둘레길(도봉산 둘레길)의 명소이자 유일한 전망대인 쌍둥이 전망대

▼쌍둥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북한산
도봉산
우이암(牛耳岩)
수락산
불암산

온갖 일들이 규칙적으로 묶여 있는 오늘날

우리 생활 속에 남이 있는 비록 일시적

이나마 완전한 자유로운

삶의 방식 하나가 등산이다.

-폴베이사르-

 

 

쌍둥이 전망대에서

쌍둥이 전망대에 이태백의 시가 붙어있다.이태백의 시 ‘山中問答’이다.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문여하사서벽산

           問余何事棲碧山하니...

무슨일로 푸른 산속에 사느냐고 나에게 묻길래...

 

소이부답심자한

           笑而不答心自閑이라...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나,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네...

 

도화유수묘연거

          桃花流水杳然去하니...

  복숭아 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가니....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이라...

다른 천지가 있어  인간 세상이 아니라네..

 

 

새들과 함께 하는 북한산 둘레길

 

 

▼도봉옛길(북한산 둘레길 20구간)▼

도봉옛길 안내도
여기서 부터 "도봉옛길"

도봉산 주탐방로와 만나는 도봉옛길은 조상의 정취를 간직한 볼거리가 가득한 구간이다.도봉산에서도 이름난 사찰인 도봉산,광륜사,능원사를 지나는가하면 도봉계곡 옆에있는 우암송시열의 도봉동문(道峰洞門)이란 바위글씨가 명산의 입구임을 알려준다.

 

 

걱정 근심이 없는 골짜기 무수골(無愁谷)

세종대왕이 재위 당시찿았다가 물 좋고 풍광이 좋아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된 무수골에는 세종의 아홉째 아들인 영해군의 묘를 비롯해 단아한 모양새를 한 왕족의 묘가 있는곳이다.

 

 

무수골에서 바라본 도봉산

빛나는 화강암과 어우러진 한폭의 산수화 도봉산. 세종 때의 문장가이며,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 특별시장) 을 두 번씩이나 지냈던 서거정은 만장봉 아래에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이렇게 읊었다 한다.

높은 다락에서 술잔들고 한번 웃어 보는데/

수 많은 푸른 봉우리 뾰족뾰족 무더기를 이루었고/

십년 세월 하는 일없이 귀거래시(歸去來詩)만 지었는데/

백발이 다정하여 자꾸만 재촉하누나 

 

 

조상의 정취를 간직한 옛길 "도봉옛길"

산을 보며 / 이해인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기쁠 때나 슬플 때

나의 삶이 메마르고

참을성이 부족할 때

오해받은 일이 억울하여

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

 

나는 창을 열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되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무장애 탐방로(시가 있는 전망대)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의 국립공원 탐방 기회를 확대하고자 조성한 무장애 탐방로는 산정약수터입구에서 시작하여 전망데크까지 220m의 탐방로로   휠체어 통행이 가능하며,탐방로  끝 전망데크에 서면 선인봉과 도봉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무장애 탐방로에서 바라본 *도봉산*

도심속의 세계적으로 로 보기 드물게 도심속에서 쉽게 찿아볼 수 있는 도봉산은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접근성이 뛰어나 연간 1,000여만명이 찿는 인기명산으로 주봉은 자운봉이다.

 

 

능원사(能園寺)

입구 현판은 ‘한국불교 도봉산능원사‘이다.보통 종파이름이 붙는데 없다. 종파가 없다고 한다. 굳이 비교를 해본다면 개신교의 순복음교회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능원사(能園寺)는 금치장으로 장식을 많이 한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안으로로 들어가 보니 용화전(龍華殿)이란 현판이 붙어 있고 경내는 조용했다.용화전이라는 이름은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해 용화세계를 펼칠 것이라는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도봉탐방지원센터
도봉산역으로 향하면서 바라본 도봉산

뾰족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이 빼어난 산이다. “푸른 하늘을 깎아세운 만 길 봉우리”라 읊었던 옛 시인의 표현만큼이나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 신선대, 오봉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대한 화강암 으로 되어있어 맑고 푸른 하늘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봉우리들 사이로 수 십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다. 

 

 

도봉산역

1988년 1월 1일 국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인근 도봉산 이름을 따서 도봉산역으로 명명되었다. 1996년 10월 지하철 7호선이 개통되어 환승역이 되었다.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연간 1,000만 명 이상 이용하는 역으로 이용객들 편의를 위한 광장이 특징이다. 이 광장과 서울 창포원을 연결하는 보도육교가 설치되어있다. 자연친화적인 형태의 디자인과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의 전경이 일품이다.

 

도봉산역에서 7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  북한산 둘레길 (20구간왕실묘역길,19구간 방학동길,18구간 도봉옛길)을 걷다. 포스팅 여기서 마침니다. 찿아주신 불친님들의 영원한 행복을 빌면서 화이팅!!! 외쳐 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