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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앨범

서울 생활속 작은 휴식처 망우산-용마산-아차산 산행일기

산행일:2023년 1월8일 일요일

산행시간:놀며,쉬며 5시간

 

산행지도

다녀온길:망원역-망우산-용마산-아차산-아차산역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에 있는 경의 중앙선 수도권 전철역 양원역 (養源驛)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중랑 캠핑숲

개발제한구역 내 비닐하우스 등으로 훼손된 곳을 복원하여 학생소풍 및 가족단위 피크닉을 주제로 한 체험형 공원이다. 인위적 시설을 최소화하였으며 건강한 숲을 주제로 한 생태학습 공원으로 휴양과 청소년 문화, 다양한 조경시설 등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있는 자연 속 편안한 휴식처로서 각광받고 있는 공원이다.~중랑 캠핑숲 홈페이지에서 발췌~

 

 

나들이 근린공원 이정표에서

긴세월 도시를 지켜온 자연에 안긴다. 회색빛 세상을 어루 만지는 치유의 산 망우산,용마산, 아차산을 오르기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선다.

 

 

망우리 고개 육교를 지나고

서울 둘레길과 구리둘레길 1코스는 대부분 중첩이 된다.

 

 

망우리 육교에서 바라본 중랑구 망우역 방향(上), 남양주 구리시 방향(下),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

건물이라기보다는 길고 좁은 길이다.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다양한 공간과 풍성한 자연을 경험한다.건물은 막힘이 없고 자연과 사람은 그 사이를 넘나든다.같은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고 자연을 넘어 도시를 발견하게 한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

망우역사문화공원은 대한민국 근 · 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잇는 살아잇는 박물관입니다. 이에 40만 중랑구민의 역사와 문화 사랑의 염원을 담아 2022년 4월 1일 중랑망우공간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 1층 미디어홀 :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를 담은 미디어 영상과 상설전시

                        · 2층 교육전시관 : 애국지사를 기리는 <뜻을 세우다, 나라를 세우다 - 건국훈장 8인> 특별 전시

                        · 조각가 권진규 님의 <자소상 - 사후제작>과 천재화가 이인성 님의 <가을 어느 날 - 영인본> 기증 전시

                        · 사색과 힐링의 공간 <돌담이 있는 사색의 정원과 망우카페, 하늘다리 전망대>

중랑망우공간은 애국지사와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역사 · 문화적 의미를 보전하고 전승하는 문화복합공간으로 새 역사를 써 나가게 될 것입니다.아름다운 숲과 쾌적한 산책로, 영면하여 계신 인물들의 인생이 살아 숨 쉬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대한민국 대표 역사문화공원으로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2022년 4월 1일  중랑구청장 류  경  기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허무는 길 "망우리 사잇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망우리 사잇길"은 묘지와 묘지로사이로  이여진 등산로 이다.

 

 

망우 전망대로

망우리 유래: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종묘사직을 마련한  후 선왕들의 능지를 정하기 위해 대신들과 함께 현재의 동구릉을 답사했다. 무학대사는 그 자리가 선왕의 능지보다는 태조의 신후지지(身後之地:살아있을 때 미리 잡아 둔 묏자리)로 더 적합하다고 권고하였다. 태조는 그 권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능지로 결정한다.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고개 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의 능지로 결정한 곳을 바라보니 과연 명당 이었다.이에 태조가"이제는 근심을 잊게 됐다" 라고 경탄한 데서 "망우(忘憂)" 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겨울철 산행 주의점

겨울 산행은 사고 위험이 커서 세심한 준비 없이 나섰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보온과 안전장비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산행 중에는 옷과 신발, 장갑 등이 젖거나 얼어 동상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여벌을 꼭 챙겨야 한다. 몸을 조이거나 꼭 끼는 옷과 장갑, 신발 등은 혈액순환을 방해해 동상에 걸릴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체력에 맞춰 계획을 짜야 하고, 탐방로를 벗어나거나 단독 산행은 위험하다. 산을 오를 때와 쉴 때를 구분해 방한 의류를 준비하고 비상식량은 꼭 챙겨야 한다.또 겨울에는 날씨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산에 오르기 전에 기상 상황을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망우산 3보루(忘憂山 3堡壘)

망우산 2보루에서 북쪽으로 약160미터 떨어진 봉우리에 있다. 망우묘역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어 원래의 형태와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정상부 남쪽 비탈면에 무너진 석축 일부가 노출되어 있고, 돌 다듬은 기법으로 보아 고구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주변에서 고구려 토기 조각과 민무늬토기 조각이 발견 되었다.망우산 3보루는 훼손이 심하여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망우산 3보루와 2보루에는 망우산이라는 표지판이 있으나 전망대가 있는 2보루가 망우산 정상 일듯하다▼

 

망우리 공원 사잇길 망우-중랑 전망대가 있는 망우산 2보루(忘憂山 2堡壘)

해발 281.7m의 봉우리에 만들어 졌으며, 망우묘역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되어 원래의 형태와 규모를 찿기 어렵다. 묘지 조성시 재사용된 돌이나 주변에서 발견된 고구려 토기 조각들을 통해 보루로 추정하고 있다.망우산 2보루는 민묘(民墓)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현 상태에서는 시굴및 발술하기에어려움이 있으며 ,추후 민묘가 어느정도 이장 되여진 상태에서 정비칯 발굴등을 추가할 예정으로 있다.

 

 

망우리 공원 사잇길 망우-중랑 전망대(망우산 2보루)에서 바라본 풍경

전망대에 올라서면 북한산 보현봉,백운대, 도봉산, 사패산,수락산,불암산(불수사도북)이 시원하게  조망되나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한탓에 시야가 흐려 아쉬움을 주고 있다.

 

 

어우룸, 머무름이 있는곳 구리둘레길

 자신을 만나는 구리 둘레길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구리시에서 왕숙천, 장자못, 한강, 아차산, 동구릉을 연결하여 조성한 길이다. 100리 둘레길을 가족과 이웃이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걸으면서 잔잔해진 자기 자신도 만나고, 자연도 감상하고, 사람 사는 냄새도 느끼고, 길동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본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동화천 약수터 갈림길

역사와 자연이 있는 구리둘레길 제1코스는 7.9km로 생태복원자원의 가치가 큰 장자호수공원을 기점으로 한강변 최대의 꽃단지로 봄이면 유채꽃 축제가 열리고 가을엔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는 구리한강시민공원, 한류관광의 명소로 떠오른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된 아차산 일대 보루군, 근ㆍ현대의 위인을 만나 볼 수 있는 망우리 묘역을 연결하는 ‘역사와 자연이 살아있는 구리 둘레길’로 조성되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산불감시 탑
망우산 1보루(忘憂山 1堡壘)로 향하면서

아차산 줄기는 용마산과 망우산으로 연결되어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이 전체를 아차산이라 하였다.아차산 능선에는 작은 봉우리마다 "보루(堡壘)"라고 불리는 성곽이 있다.보루는 흔히 300m 이하의 작은 성곽을 가리키는데, 군사적. 행정적 중심지 역활을 하는 일반 성곽과 달리 주로 교통로나 요충지를 감시하는 기능을 하였다.몇 개의 보루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망우산 1보루(忘憂山 1堡壘)

망우산의 보루 중 훼손이 심한 2,3보루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망우산 남쪽 끝봉우리(해발 280.3m)에 자리하고 있으며,용마산 보루와 시루봉 보루 일대가 잘 조망된다. 1994년 지표조사에서 고구려 토기편 여러 개가 발견되어 고구려 보루로 추정된다.헬기장과 군용 참호, 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으나 지금은 헬기장과 참호를 없애고,유적을 돌아 가도록 하는 등산로를 만들어 보루를 보존하고 있다.

 

 

사가정 역 갈림길(서울 둘레길, 구리 둘레길, 중랑둘레길이 함께하는곳)

중랑둘레길은  중랑구에 있는 행사나 역사, 사건을 테마로 이정표에 이름을 만들고 지역 상권과 연계를 해놓은 길이다.

 스템프가 있는곳은 망우리 공원-망우  삼거리 북 카페(서울 장미축제)-중랑천-아차산 봉수대-용마산 정상-용마폭포-사가정공원(스포츠 클라이밍 경기장)-용마산 자락길-배밭공원(황실배)-충익공 신경진 묘역-중랑구 휘장-중량 캠핑숲에  있다.

 

 

깔딱고개(570계단)

아차산장성 길은 고운흙을 다져서 만들어 1,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곳의 작은돌, 토기 한조각도 함부로 옮기면 유적이 훼손되어 발굴이 어려워 진다. 고구려 보루와 아차산장성을 잘 보존하고 사랑하는 것 이 중궁의 동북공정(고구려 역사를 중국역사라 주장)을 통한 역사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든든한 방패가 될것이다.

 

 

깔딱고개(570계단) 전망대에서 바라본 망우산 1보루(忘憂山 1堡壘)

사적455호 용마산.아차산 보루군은 고구려 와 신라 유적으로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이 한강 하류를 차비하기 위한 전략 요충지에 축성한 남한에 남아 있는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이다.  아차산장성(아차산~용마산~망우산~배봉산)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면목동 하북위례성설)토성으로 추정하며,고구려가 점령후에는 보루로 이어주던 연결로로 사용되었고,신라가 점령후에는 이곳에 장한성을 쌓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살곶이 목마장의 담을 축성하였다.

 

 

깔딱고개(570계단)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이곳에 서면 멀리 남양주 천마산 과 백봉산, 덕소, 와부읍  그리고 적갑산, 예봉산, 예빈산과  하남시, 팔당대교, 검단산및 서울 강동구등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조망 할수 있는곳이나 미세 먼지로 겨우 한강의 구리 암사.대교 만이 조망될 뿐이다.

 

 

용마산5보루(龍馬山 5堡壘)

서쪽의중랑천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용마산 능선에는 7개의 보루가 있다. 이곳 용마산 5보루는 해발 316m에 위치해 있고, 둘레 약 132m, 내부면적 936m² 정도의 크기로 추정된다.보루 북동쪽 비탈면에서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 일부가  땅 표면 위로 드러나 있고 보루 내 북쪽에서 고구려의 전형적인 토기 양식인 몸통긴항아리(長胴壺)가 깨어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겨울철 안전 산행을 합시다.

용마산5보루(龍馬山 5堡壘)에서 컵라면에 점심 먹고 있는데 119소방헬기가 날아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제3헬기장이 아닌가 싶다.나중 에 알아보니 젊은 친구가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산행을 하다 발목을 다쳐 119헬기에 싫려 갔다고 한다. 모든 계절 다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겨울철 산행은 꼭 안정장비와 함께 산행 즐기시길!

 

 

중랑 둘레길 스템프가 있는 제2헬기장

중랑둘레길은 중랑천과 묵동천, 망우산, 용마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특성을 살려 중랑자연탐방길을 조성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전통시장을 연계하는 자연과 관광을 접목한 테마가 있는 둘레길이다.

 

 

제3헬기장
용마산으로 향하면서 바라본 미세먼지가 가득한 롯데타워

자동차 경적대신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리고 아스팔트가 아닌 흙과 바위가 밣히는 길  이러한 자연을 곁에 두고도 그동안 

너무 먼곳의 풍경만 꿈꾸고 삻았던건 아닐까?  그저 보이는 경치에 취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 이기도 했던  아차산은 그역사를 알고 가면 더욱 특별한 산행이 된다.

 

 

용마산 체육공원
용마산 용마봉(龍馬山 龍馬峰)

용마가 날아오른 산 용마산은 용마폭포공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양최대의 인공 폭포라는 유명세가 용마산의 명성을더했다. 용마폭포공원은 용마산의 채석장을 활용해조성했다.용마산의 어원은 삼국시대로 올라간다. 용마산은아차산과 마찬가지로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에해당했다. 당시 인근 마을에 장수가 될 재목의 비범한아기 장수가 태어났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역적이될 아이라고 수근거렸고 부모는 자신들의 죽음이두려워 아이를 죽여 뒷산에 버렸다. 그 후 뒷산에서용마가 나와 날아갔다고 해 용마산이란 이름을 붙였다.조선시대에는 같은 산 아래 목장이 있었는데 용마가태어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산 이름을 용마산이라고붙였다고도 한다. 지금은 힘찬 물줄기용마폭포가  용마의 형상을대신할 따름이다.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아차산 능선과 한국의 랜드마크 롯데타워

용마산은 348m의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꽤나 장대한 풍광을 안긴다. 정상에서는한강과 중랑천을 비롯해 서울 동남부가 한눈에내려다보인다. 일대가 분지를 이루고 있음을 손쉽게 알수 있다. 산행은 즐기기에 따라서 중곡동을 지나 아차산까지이어진다. 보통 아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장군봉이라 이르는데 용마산을 말한다. 아차산은백두대간 광주산맥의 끝자락으로 용마산까지 아울러하나의 산으로 이르기도 한다.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아차산 4보루(阿且山4堡壘)

용마산은 중랑구민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산이다.봄날에 오르면 정상 주변으로 만개한 진달래나 철쭉,개나리 등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용마산 정상 아래팔각정인 용마산정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풍경도좋다. 서울시의 우수 조망 명소로 그 이름값을 한다.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히 장수를 탄생시켰을법한 산이구나 싶어진다.용마산은 주택가와 밀접해 있어 인근 주민들의 산행이나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긴고랑 입구 갈림길
긴고랑 입구로 내려가는 데크계단

아차산 긴고랑 길에서는 '봄의 전령사'매화꽃을 만날 수 있으며,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해 긴고랑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무성한 소나무 숲을 지나 아차산 능선에 도달하면 아차산 일대 보루군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조망 할 수 있다.

 

 

아차산 4보루(阿且山 4堡壘) 성벽

아차산 4보루는 크게 성벽과 건물터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 249m의 성벽은,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바깥면을 돌로 쌓음과 동시에 안쪽 경사면을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져 메우는 식으로 만들었고,외부 감시와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유리한 곳에 치(稚)를 설치하였다.독특한 구조의 남쪽 이중치는 출입구로 추정되며, 고구려 성 쌓기의 전형인 톼물림(들여쌓기)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

 

 

아차산 4보루(阿且山 4堡壘) 건물터

성벽 안쪽의 건물터는 병사들의 생활에 필요한 온돌과 배수로,저수조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항아리.명문접시.시루 등의 그릇과 투구.찰갑. 창 .도끼.화살촉 등의 무기,낫. 쇠스랑 등의 농기구, 재갈.등자와 같은 말갖춤이 발견 되었다.

 

 

아차산 4보루 (阿且山 4堡壘)에서 바라본 용마산

사적 제455호로 지정된 아차산 4보루는 아차산 3보루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아차산 능선의 가장 북단에 해당하는 지점이다.발굴결과 건물지, 저수시설, 온돌유구가 확인 되었다.

 

 

아차산 4보루(阿且山 4堡壘) 에서 3보루로

 아차산이 간직한 또다른 역사의 흔적. 삼국시대의 고구려군의 군사시설이던 아차산 4보루  (阿且山 4堡壘)다. 치열했던 전투가 있었던  요새에 오르니 고구려 군이 한강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흔적이 보이는듯 하다.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등산을 다니면서 자연도 공부하고 역사도 공부하고 아주아주 좋은 산이 되였다.뭔가 과거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다.

 

 

선인의 숨결을 느껴보자. 한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백제가 자웅을 겨루던 아차산 산행기

아차산은 고구려 유적지가 있는곳 이다.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 볼수 있다는 자체 많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옛 선인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곳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아차산 그곳에서 치열했던 삼국의 전투를 상상해 본다.

 

 

아차산 정상 3보루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55호지정된 아차산 정상 3보루. 둘레 450m 면적6500m² 크기로 주변 보루중 규모가 가장 크지만 이루 구역만 발굴 조사 되었다.지형상 평지와 비탈면 경계지점에 석축 성벽을 쌓고 성벽 안쪽에 생활 시설을 만들었다. 건물지, 배수시설, 저장고, 단야 시설 등이 확인 되었다. 다른 보루에서는 확인 되지 않았던 디딜방아의 불씨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 되어,아차산 3보루가 아차산 일대 병사들의 식량 지원처로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차산 정상 3보루 바라본 구리 암사대교

아차산은 비교적 완만한 높이의 산세이다 보니 가벼운 차림의 시민들도 심심찮게 만날수 있다. 아차산 옆으로 흐르는 한강. 낯에는 나쁜이산화 탄소를 보내버리고 밤에는 강원도에서 산소 탱크를 빨아  올리면서 중랑구와 광진구 일대로 내 뿜는다.아차산에서 좋은 공기가  다내려가니 광진구, 중랑구 주민에게은 허파 같은 곳이기도 하다.아름다운 경치도 귀한 보물도 별 다른 비탈 없이도 내어주는 걸 보면 아차산은 친숙한 동네뒷산으로나 가치높은 유적지로나 참 마음 넉넉한 산이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전해지는 아차산

590년 고구려 온달 장군이 아내 평강공주의 배웅을 받으며 신라에 빼앗긴 한강 땅을 찾으러 전투에 자원했다가 화살을 맞아 전사하는 비극을 낳은 곳도 이곳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한강을 차지한 국가는 한반도의 패권국이 되었기 때문에 광나루는 늘 군사적·정치적 요충지였다.

 

 

아차산 5보루(문화재 보존과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출입이 제한 되여져 있다)

아차산 6보루에서 남쪽으로 약 250m 떨어진 작은 봉우리 (해발 267.2m)에 있다. 둘레 약 158. 내부면적은 약 1,818m²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한강 남쪽의 암사동에서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 잠실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상부와 연결된 북 쪽 비탈면에 석축 일부가 노출되어 훼손 되고 있던 것을 흙을 덮어 보존하고 있다.

 

 

아차산성 ('阿且山城' 또는 '峨嵯山城')

아차산성은 서울시 광진구 아차산(해발 285m)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아차산은 옛날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을 찿이하기 위해서 혈투를 벌렸던 역사의 현장이기도하다.아차산성(홍련봉 보루성)은 지금 발굴현장이며  홍련성 보루성은 고구려의 광개통 대왕과 장수왕이 왔다가 머무렀던 곳이기도 하다.아차산성에는 2가지 슬픈 역사가 전해온다. 하나는 백제의 수도 한산이 고구려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성 아래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다른 하나는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장군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하여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것으로, 이러한 전설을 간직한 온달샘이 성안에 있다.백제의 옛 도읍지에 있는 아차산성은 누가 쌓았는지에 대해 아직 논란이 있지만 삼국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그 의의가 있다.

 

 

아차산 1보루

아차산 5보루에서 남쪽으로200m떨어진봉우리(해발250m)에 만들어진것이다.1994년 지표조사에서 고구려토기 조각이 여러개발견 되었고, 보루동쪽,남족 일부에서 성벽이 확인 된다.이곳 아차산 1보루에서는 남쪽과 남동쪽으로 아차산성괴풍납토성, 몽촌 토성 자리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북동쪽으로는 아차산 5보루를 볼 수 있다.

 

 

해맞이 공원 전망대

잠들었던 도시가 기지개를 켠다.서울 광진구 아차산은 서을 최 동단에 자리해  서울에서 가장  먼저 뜨는 산이다.아차산은 매년 해맞이 축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낙타 능선에 자리한 고구려정은 일출은 물론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명소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운동을 위해 찾는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아차산.

"아차산 유래" 아차산에 대한 유래가 하나 있는데, 옛날에 홍계관이라는 점쟁이가 점을 잘 본다는 소문이 있어서 명종이 불러서 시험을 해 보려고 할 때 여기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 맞히라는 문제를 내었다. 홍계관은 잠시 생각하더니 쥐  세마리가 들어 있다고 얘기하자 왕이 상자를 열어 보았더니 여기에는 쥐가 한 마리만 들어 있었다. 그걸 본 왕은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속인 죄로 홍계관을 산(아차산)에서 처형하라고 명령하였으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쥐를 갈라보았더니 뱃속에는 새끼 2마리가 들어있어서 그제서야 정확히 3마리였음을 알게 되었고, 왕은 뒤늦게 '아차, 내가 잘못 알았구나!' 하고 후회했다.그래서 하인을 시켜서 처형하지 말라고 했으며 하인이 산으로 가서 처형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그걸 본 처형수는 빨리 처형하라는 소리인 줄 알고는 처형해 버려 "아차!"했다는 이야기에서 아차산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차산의 이름이 이미 있은 후에 홍계관의 이야기를 삽입한 경우라서 결과적으로 이 유래는 정설이 아니다.

 

 

일출은 물론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명소. 아차산 고구려정(高句麗亭)

아차산 고구려 정은 1984년 콘크리트 구조물로 건축하여 팔각정이라 명명 햇는데 노후로 인해 건물전체가 기울어져 정밀 진단후 208년 1월에철거하였으며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유물이산재한 이터에 고대사 연구 역사 학자들의철저한 고증자문을 거쳐 2009년2월에 착공하여같은ㄹ해 7월에 준공하였으며명칭을 팔각정에서고구려 정으로 변경 하였다.고구려정의 기둥은 고대 그리스도리아식과비슷한 기둥가운데 부분이불록한 고구려전통양식의 배흘림식으로, 자재는 3백년이상 뒤틀리거나 변하지 않는 금강송이며, 기와는 고구려궁월인 평양 안학궁터와아차산 홍련 봉보루에서출토괸 기와의붉은 색상과 문양을,단청 문양음쌍영총과 강서 중묘등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표현된 문양을 참고로 하여남한에서 최초로고구려당시의 건축양식을 재현하였다.

 

 

아차산 둘레길

아차산 둘레길은 길 초입부의 무장애길 구간을 거닐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무성한 소나무 숲에서는 삼림욕과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완만한 경사를 유유히 걷다보면 길의 끝자락에서는 "봄의 전령사" 매화 꽃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문화 유산과 인물의 자취가 남아 숨쉬는곳. 아차산

쟃빛 빌딍숲에서 온 사람을 상쾌한 진짜숲이 반겨준다.자하철이 근처에 있어서 누구리도 쉽게 찿아 오를수 있는 아차산.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피톤 지즈를 가장 많이 내뿜는 소나무가 반겨주는곳 아차산. 해발3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아차산은 키는 작아도 그 품 만큼은 참 널다.한강변에서 솟구치는 능선이 용마산을 거쳐 망우산 까지 부두럽게 이여진다. 그안에 우거진 숲길을 걷다보변 번잡한 도시속에 있다는 사실을 금세 잊고 잃었던 여유를 찿는다,

 

 

고구려 유적지가 있는곳. 옛 선인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곳,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아차산

사람이 살기 좋은 지세를 가리키는말 배산임수(背山臨水: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하천이 흐르는 형태의 입지) 유자락에 흐르는 한강과 그곁애 벗하고 있는 아차산 일대는 서울이 한양이던 시절부터 지끔까지도 명당으로 꼽힌다.수풀이 우거지고  야생동물이 많아 임금의 사냥터 이기도 했던 아차산. 오랜세월 변치 않고 지켜진 자연속에서 이제는  누구라도 그옛날 왕이 부럽지않은 풍경을 만날수 있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과 어우러진 수도 서울의절경을한눈에 볼수있는곳 아차산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한강과 어우러진 도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40분 정도의 등산로를 오르면 정상에서 보이는 잠실부터 남산,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360도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진 장관이 특징이다. 또한 해발 295.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구리와 인근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 등의 광범위한 지역 모두 아차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