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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앨범

해맞이 명소 아차산에서



 산행지:아차산

산행일:2019년1월1일 화요일

산행친구:나홀로


산행코스:사가정역(7호선)-깔딱고개-용마산- 아차산- 고구려정- 아차산역(5호선)



"용마산 터널"

사가정역에 10시에 도착한다,집부근 태릉에서 7호선 타고 5정거장 코앞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척에 있는거리다.

지척에 아차산이라는 명품산이 있다는건 나에게는 축복이다.

물론 아차산 뿐만 아니라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사패산 까지 모두 7호선 연장거리 선상에 있으므로 가볍게 다녀올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해가 벌써 중천에 떠오르고 있다.해맞이 축제에 갔던  분들도 거의 하산한듯 등산로는 한적하기 그지 없다.

매년하는얘기지만 매일매일 떠오르는 태양이 다 똑같지 뭐  다른가. 하면서 해맞이를 못한 기분을 핑게로 대본다.



한적한 잣나무 숲을 지난다.

도심에 있는 산이 그렇듯이 아차산, 용마산 코스도 정말 다양하다.지하철 5호선과 7호선 아차산, 용마산 주변의 역들은  거의 산행들머리라고 해도 부족함이없다.

나는 7호선 사가정 역을  산행들머리로 5호선 아차산역을 산행 날머리로 삼는다



깔딱고개 쉼터

깔딱고개는 산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흔히 만나는 이름으로,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숨이 깔딱 넘어갈 만큼 힘들다.

 그런데 아차산에는 숨이 넘어갈만큼 깔딱고개는없다. 등산로도 잘정비  되여져 잇다

 체력여하에 따라 다를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데다 아름답기까지 하다는게  내생각이고. 힘들이지 않고도 거뜬히 완주할 수 있는곳이라 생각든다.



깔딱고개에서 용마산 5보루로 향한다/.

570계단이 설치되여져 있다

570계단을 오르니 수명이 35분 늘었으며 90kcal를 소비햐였다



불암산과 수락산

노원구에서 기존행사지인 불암산대신 2019년은 수락산에서 해맞이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구리암사대교뒤로 좌측예봉산과 우측 검단산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조망된다

아차산에서 바라보는 한강유역의 경치가 수려하다. 그래서 그렇게 서로차지 하려고 고구려,백제,신라가 전투를 했었나??



천마산도 구름에 가려져 있지만 그모습을 들어내고~~




용마산 5보루

용마산 5보루는 해발316m위치해 있고 둘레 약132미터, 내부면적 936평방미터정도의 크기로 추정된다

보루 북동쪽 비탈면에서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일부가땅표면위로  드러나 있고,

보루 내북쪽에서고구려의 전형적인토기 양식인 몸통긴 항아리가 깨여진 채로발견되기도 했다



한국의 랜드마크 123층 롯데월드 타워를 바라보는 재미도 솔설하다



용마산 5보루에서 바라본 용마산 정상

용마산에는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산양이 출몰한다고 한다.

도심한복판에 그리높지 않은 산에산양이 살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용마산 정상으로 산행한후 다시이곳으로 와서  아차산 정상으로 향한다



용마산 4보루

용마산 4보루는 용마산 정상에서북동쪽으로 약260m 떨어진 주 능선상의 돌출된 봉우리(해발327.3m)에 위치하고 있다

평면이 긴 타원형으로 전체둘레 263m,내부면적3,075평방미터이며 용마산 보루중 가장 큰 규모이다.

현재는 헬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차산에서는 분재 같은 소나무를 여기저기서 만나볼수있다.



아차산  등산은 아차산 보루(堡壘) 와 함께한다.

"보루"는  적군을 막거나 공격하기 위해 흙이나 돌로 튼튼하게 쌓아놓은 진지를 가리키는 군사용어다.



아차산은 누구나 쉽게 오를수 있어 매년 4만~5만 명이 신년해돋이를 보러가는 장소다

해맞이를 했다는 산우에게 물어보니 해맞이는  구름에 가려 아쉽게도 제대로 볼수없었다고 한다.



용마산 체육공원

낮은 산이라 등산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아 서울 동부나 강동 지역의 등산객들이 그런대로 찾는 일종의 동네 뒷산같은 느낌이든다



용마산 정상 전경



용마산(龍馬山)

해발 348m의 용마산은 아차산의 최고봉으로 면목동 동현에 위치하고 있으며예전에 용마가 나왔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크다고 하여 대봉이라고도 한다.

 망우리공원, 중곡동 간의 산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를 통해 망우리에서 아차산성을 거쳐 어린이 대공원 후문 근처까지 이어진다.



서울특별시 광진구경기도 구리시를 잇는 높이 287m의 아차산은 

북쪽으로 용마산이 이어지며,아차산과 용마산을  하나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따로 구분한다.



용마산 정상에 있는 벚꽃이 옷을 모두벗고 새옷으로 갈아 입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면 이벚꽃나무는 등산객의 포토죤으로 이용될만큼 아름다운 벚꽃이 핀다




아차산 전설====박하린

오랜 풍상 견뎌 온 아차산성

무너진 석축 돌무지 틈  서리마다

스며 있을 무사들의 피, 함성

평강공주 바보사랑이야기

전쟁과 살육

사랑  가슴앓이

예나 지금이나

변한건 하나도 없는데

"인간사 부질없다"

세상일 본듯 못 본듯 아리수

아차산 구비  돌아

무심한듯 흘러내리네



아차산 일대는 삼국시대 때 고구려·백제·신라가 국운을 걸고 싸움을 벌였던 최대의 격전지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성을 방위하던 제1의 요새인 아차산성과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산꼭대기에 만든 군사시설 보루군은 아차산의 아픈 과거를 보여준다.



아차산 4보루

고구려는 삼국시대의 전략적요충지였던 한강유역에  20여 개의보루를 만들어남진 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하였다.

아차산 일대의 보루는 475년고구려(장수왕63년)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물러날때까지사용 되었다.

아차산 4보루도 토기 형태와목탄의 연대 측정결과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 사이에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차산 4보루에서

아차산 4보루는 크게성벽과 건물터로구성되어 있다,

둘레 249미터의 성벽은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바깥면을 돌로 쌓음과 동시에 안쪽 경사면을 뒷채움 돌과  흙으로다져  메우는 식으로 만들었고,외부감시와 침입하는 적을방어하기 유리한 곳에 치(稚)를 설치 하였다. 독특한 구조의 남쪽 이중치는 출입구로 추정되며, 고구려 성 쌓기의 전형인퇴물림(들여쌓기)형식이 잘나타나 있다




아차산 4보루에서 바라본 용마산 (맨왼쪽)

비둘기들이 한가로이 먹이를 먹고 있다.

아차산 4보루 성벽 안쪽의  건물터는 병사들의 생활에 필요한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등이 배치되어 있다.

 아차산 4보루에서는 항아리, 명문 접시, 시루등의 그릇과투구. 철갑.창,도끼,화살촉 등의 무기,낫,쇠스랑등의 농기구. 재갈.등자와 같은말갖춤이 발견 되었다




아차산은  고구려의 온달 장군의 전사지로 유명한데, 그냥 동네 뒷산에 불과할지도 모를 아차산의 이름을 그나마 전국적으로 알려주는 소재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고구려와 온달의 이름을 가지고 광진구와 구리시, 충북 단양군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단양군이 끼는 이유는 온달의 전사지가 아차산성이 아닌 단양군 온달산성이라는 이설이 있기 때문이다.




아차산3보루

아차산 줄기의 6개보루중 가장 가운데(해발296m)에자리하고 있다.동남쪽의 아차산 2보루와 한강이남은 물론 서쪽이 용마산 보루들을바라볼수있는 요충지이다.

성벽둘레 약450m 내부면적 약 6,500평방 미터로 추정되어,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남시와 검단산



아차산은 용마산과 망우산등 주변산지와 연결되어 있고, 조선시대까지는 이 모두를 아차산이라불리 웠다 한다.



도삼한복판에서 산을 천천히 즐기면서 힘들지 않게 산행을 원하신다면  아차산 산행을 추천드리고 싶다



중간 중간에 전망대가 있어 쉬어가기 안성 맟춤이다.

한강이 한눈에 보이거  서울전망으로도 좋은 장소이다.



용마산

생각보다는 날씨가 좋다, 그리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않고 산행하기 딱좋은 날씨다.

미세먼지가 조금은 있어도 산행에 방해를 할정도는 아니다. 이미 많은 산우님들이 해맞이를 끝내고 하산해서 그런지 오히려 한적한 느낌마져 감도는 등산길이다



우아하고 단아한 나무  명품 소나무( ‘아차산 명품 소나무 제2호)



우아하고 단아한 나무  명품 소나무( ‘아차산 명품 소나무 제1호)

명품 소나무는 아차산의 바위틈을 뚫고 자라 광진구와 한강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 광진구민과 함께했다.

소나무의 가지가 사방을 향해 뻗어 있는 모양새가 우아하면서도 단아하기까지 하다. 명품 소나무 옆에 자리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멋진 경치 또한 나무랄 데 없다.

 용마산의 우아한 자태도 볼 수 있어 사진을 찍기에도 그만이다.



아차산 5보루

아차산 6보루에서남쪽으로 약 250m떨어진 작은 봉우리 (해발 267.2m)에 잇다.둘레 약158m.내부면적은약 1,818평방미터로 추정된다.

정상부의와 연결된 북쪽 비탈면에 석축 일부가 노출되어 훼손되고 있던 것을 흙으로 덮어 보존 하고 있다,

이곳 정상의 돌무더기는 비교적 최근에 쌓은 것으로서 무너진 성돌을 주워 사용했을것이다,

이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이 여러졈 발견되어,삼국시대 보루를파괴하고 통일 신라시대 고분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아차산 5보루에서

아차산 5보루에서는 한강 남쪽의 암사동에서 풍납토성, 몽촌토성등 잠씰까지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아차산호....연기석

광나루에 닻을내린

고구려호의 아차산호

아무리 공격 받아도

물러설줄 모르네

천년을 버티고 서서

승전고를 울린다



아차산 1보루

아차산 5보루에서 남쪽으로200m떨어진봉우리(해발250m)에 만들어진것이다.1994년 지표조사에서 고구려토기 조각이 여러개발견 되었고, 보루동쪽,남족 일부에서 성벽이 확인 된다.이곳 아차산 1보루에서는 남쪽과 남동쪽으로 아차산성괴풍납토성, 몽촌 토성 자리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북동쪽으로는 아차산 5보루를 볼 수 잇다.



아차산은 고고학적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산에는 백제가 쌓은 아차산성과 고구려가 쌓은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 있는데, 이 지역은 고구려와 신라까지도 영토 다툼을 벌이던 지역이라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고 있기 때문. 1990년대에 대규모 발굴을 했으며, 2010년대에는 다시 홍련봉 1, 2보루와 아차산 3, 4보루를 재발굴을 하였다.아차산 일대보루군  발굴 과정에서 고구려 관련 유물을 적지 않게 수습했다.



잠실방향으로 롯데타워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냥갑 같은  삭막한 회색빛 아파트도  산위에서 보니 한폭의 그림같이 느껴진다.




아차산 해맟이 광장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새해소원을 빌었으리라

 2019년 황금돼지의 해 기해년(己亥年) 올한해 모든님들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해맟이광장은 일몰때에도나름 운치가 잇어낙조명소로서도 손색이 없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아차산'

서울의 가장 동쪽에 위치해 제일 먼저 해가 뜨는 아차산은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에서 아차산 공원까지 도보로 약 15분 거리로 교통이 편리하다. 또 산세가 완만해 남녀노소 모두 부담없이 오를 수 있고 전망이 좋아 해맞이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전해지는 아차산에는 아차산성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들이 있다.

고구려의 장수인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전사한 곳이 바로 아차산성이다.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아차산 중턱까지 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운동을 위해 찾는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망이 좋은 숲길 아차산

아차산 능선부를 따라서울시를 둘러 싸고 있는 모든산과 시가지 한강을 조망할수 있는곳이 아차산이다

삼국시대의산성이 남아 있어아차산보루위를 거닐며주변경관을 조망할수 있는것이 아차산의 특징이다.



  ▲언제나 본연의 푸른빛 그대로를 자랑하는 소나무는 아차산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아차산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데 소나무가 뿜어내는 공기를 마시기 위해 아차산을 찾는 사람도 많다.▼



아차산 고구려정(高句麗亭)

아차산 고구려 정은 1984년 콘크리트 구조물로 건축하여 팔각정이라 명명 햇는데 노후로 인해 건물전체가 기울어져 정밀 진단후 208년 1월에철거하였으며 ,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유물이산재한 이터에 고대사 연구 역사 학자들의철저한 고증과자문을 거쳐

2009년2월에 착공하여같은ㄹ해 7월에 준공하였으며명칭을 팔각정에서고구려 정으로 변경 하였다




고구려정의 기둥은 고대 그리스도리아식과비슷한 기둥가운데 부분이불록한 고구려전통양식의 배흘림식으로, 자재는 3백년이상 뒤틀리거나 변하지 않는 금강송이며, 기와는 고구려궁월인 평양 안학궁터와아차산 홍련 봉보루에서출토괸 기와의붉은 색상과 문양을,단청 문양음쌍영총과 강서 중묘등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표현된 문양을 참고로 하여남한에서 최초로고구려당시의 건축양식을 재현하였다



고구려정 터가 아차산에서가장  기(氣)가 왕성한 곳이라 한다

역사적 명산의  기(氣)가 왕성한장소 고구려정 터에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한다.

우리민족의 위대한 문화 유산을보호하는데  우리모두 힘써야 하지않을까



아차산은 고구려, 백제, 신라고대 삼국시대의치열한 각축장이였던아차산성과 고구려군사 보루가 있는 우리 민족역사의현장으로서,

도도히 흐르는 한강과 어우러진 수도 서울의절경을한눈에 볼수있는곳으로 서울시민의 사랑받는곳중 한곳이다.




2019년 황금돼지의 해 기해년(己亥年)을 맞아 1일 아차산 해맞이 광장에서 ‘2019년 아차산 해맞이 축제’를 개최했다.
 아차산 입구에‘희망의 문(에어아치)’과 높이 3m 황금돼지 캐릭터를 설치해 등산객을 반기고

 해맞이 광장까지 가는 등산로 1500m를 따라 ‘청사초롱’을 준비해 새벽녘 인파의 발길을 비췄다. 



* 고구려 유적 보고(寶庫) '아차산' *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해발 295.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구리와 인근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 등의 광범위한 지역 모두 아차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백제의 도읍이 한강 유역에 있을 때 우뚝 솟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 아차산에 흙을 깎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아 올려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 토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단성(阿旦城), 아차성(蛾嵯城), 장하성, 광장성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여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장기간에 걸쳐 벌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차산(阿嵯山·峨嵯山·阿且山) 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아차산을 아끼산·액끼산·에께산·액계산·액개산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 또는 ‘아단(阿旦)’으로 언급되며, 조선시대에 쓰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휘가 ‘단(旦)’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 ‘단’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바꾸면서 ‘단’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차(且)’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자만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등을 모두 ‘아차산’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하산후 아차산 산행후 꼭 들리는 순대국집에서 순대국과 소주한잔 하면서

아차산 산행기 여기서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