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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

남한산성 역사의 발자취를 걷고오다.



산행일:2017년12월17일 일요일

산행친구; 역시나  나홀로


 오후3시에 광주 오포 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다.

꼭  가봐야 할곳이고  의논도 해야 하는 곳이다.

 일요일 휴무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 시간만  되면  가까운 난지도 하늘 공원이 라도  갈까 생각 했지만  시간이 맟지 않아  그만 두고

휴무일이지만 바쁜일정 때문에 일하는 동료도 있다.

 딱히 시간떄우기도  그렇고 현장 바쁜일 도와주러  출근 했다가  일 도와주고  지척에 있는  남한산성 갔다 광주 오포로 향한다.


 

등산코스:동문(좌익문)주차장-남문(지화문)-수어장대- 서문(우익문)-연주봉 옹성--북문(전승문)-동장대터-장경사-송암정-동문 (좌익문 )원점회귀 산행


 

동문에 세워져 있는  남한산성 표지석 변해있다.

2013년 8월31일 산행시 사진이다. 세계문화 유산 등록 되기전이다.

2014년12월7일  방문시에는 등록되기전 표지석인지 아니면 등록 후 표지석인지 포장지로 쌓여져 있고  설치되여져 있지않은 상태 였으므로~~

그이후에  새로운 표지석이  설치된것만은 확실하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성이다.

 병자호란 때 조선의 16대 왕 인조청나라에 대항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50년대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원화된 후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곳에서 40여일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한 곳으로 유명하다.


 

 201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남한산성은 주변 시민들에게 훌륭한 휴식처이자, 건강을 위한 등산 산책 코스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2016년 11월 9일 남한산성의 문화재 관리기관이 종전 (재)경기문화재단에서 경기도지사로 변경되었다.




  현장일 마치고  15여분 달려서  남한산성 동문 주차장에 주차(주차비 1,000원) 시키고 12시 산행시작한다.

남문(지화문) 방향으로 해서 동문 (좌익문)으로 하산하는  원점 산행을 할것이다.




천천히 천천천히  산행시작한다.

생각보다 산행길이  미끄럽다.

아이젠 가지고 오지않아  스틱에 몸을 맡기고 오른다.


 

 남한산성은 아마도 20여회 이상 오른산이라  생각된다.

특히 광주에서  일할때는  가깝기 때문에  시간만 나면 시도 떄도  달려 왔던  곳이라  기억된다.

물론 반타작 했던일도  부지기 수이지만,

올라도 올라도 사계절 아름다운  남한산성이다.


 

제3남옹송  가기전  바라본  하산지점인 동장대 터에서  동문으로  내려오는 성곾과 함께 좌측 망월사  우측장경사도  보이고

그뒤로는  검단산이  자리 잡고 있다.


 

 남한산성은 서울 시내에서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리 높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차지 않고

경치도  좋고

하늘도 맑고

쌕에는 생수한병만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요새로 평가받는 남한산성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가파르게 쌓았다.



 수도권에 위치하면서 4개 지자체(성남, 광주, 하남, 송파)가 접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 연간 280만명이 찾는 관광지로서 쉬엄쉬엄 올라가는 등산로는 가파르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오르기 좋다. 성은 본성과 외성으로 나뉘어 둘레는 약 12㎞ 정도 되며, 산성내 전체가 완만한 분지형태로 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산책할 수 있다. 특히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상태로서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을 기하고 있다.

 

 

 남한산(522m)은  남한산성의  운명으로  태여 났다.

밖에서  보면  험준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부드러운  산세와 북쪽으로 한강을  접한  전략적 중요성을  두루 갗춘  천혜의 요충지다.

삼국시대 부터 축조된  산성은 인조 2년(1624) 대대 적으로  중축 되였다.


 

 남장대터(제3남옹성)



 남한 산성을  축조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인원이  동원 되였을 까???

이성벽을  쌓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했을까??

사람의  힘이란  참으로  위대하다.

지금처럼 장비도 없고 도구도  시원치  않아  맨몸으로 남한산성을  축조 했을  터인데~~



 지금우리  후손들은 하나의 관광지로서 눈을  정화 시키고  마음을  달래며  힐링장소로  이용되고 있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성안에서  많은 외세 침입을  막으려고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을까.

치욕의  역사가  담긴  순둥이 처럼  착한길 남한산성길을  걷고 있다.



  남문에서 수어장대로 이여지는 산성을  바라보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주말이면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울긋 불긋 걷는 맛이 좋아  찿아온 산꾼들로 북적죽적하다.




우리 역사에서  남한 산성  만큼 치욕적인  상처를  간직한곳도  드물다..

1637년 병자호란의  굴욕을  겪었고 조선후기에는 천주교  박해 사건도  있었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한동안  육군 교도소가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한산성 원형을  말끔하게 복원되어 노송이  우거진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다.



남문이  바라보인다.

남문은 성의 서남쪽에 있는 문이다. 남문은 정조 3년(1779년)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되어 지화문(至和門)으로 이름 붙여졌다.

또 남문은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많은 왕래가 이루어졌던 남문. 이 문을 통하여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왔다. 



 

남문 (지하문)


 남한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의 네 군데에 입구가 있다.

또 그 외에도 중간 중간에도 입구가 많이 있다..

 걷는 코스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지만 구간구간 샛길이 많아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남한산성 등산로 1코스 
총 거리 : 3. 8km
총 소요시간  80분
코스 : 산성종로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산성종로 

남한산성 등산로 2코스 
총 거리: 2.9km
총 소요시간 : 60분
코스 : 산성종로 - 영월정 - 숭열전 - 수어장대 - 서문 - 국청사 - 산성종로

남한산성 등산로 3코스 
총 거리 : 5.7km
총 소요시간 : 120분
코스 : 역사관 - 현절사 - 벌봉 - 장경사 - 망원사 - 지수당 - 관리사무소

 남한산성 등산로 4코스 
총 거리 : 3.8km
총 소요시간 : 80분
코스 : 산성종로 - 남문 - 남장대터 - 동문 - 지수당 - 개원사 - 산성종로  

남한산성 등산로 5코스 
총 거리 : 7.7km
총 소요시간 : 200분
코스 : 역사관 - 동문 - 동장대터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동문


 

 

 지나온  남장대터(제1남옹성)

성벽이  자연과  한몸이  된듯 잘조화된 모습이 아름답다.

길도 좋고  바람도 좋고 해도 좋고  가는길도 부드럽고~~


  

  잠실 롯데 월드타워

남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길은  약간의 경사도가 있는  계단 구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가는 길이 부드럽고 순하다.


 

성벽길을  따라 걸어본다. 

노송이  우거진  남한 산성길은  차분히 걷기 좋은  산길이다.

남한산성은 청량산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영춘각



 오르막의 끝에 청량산 정상과 수어장대에 다다르면 서울 송파지역 풍경과  롯데월드 타워 

경기도광주지역 풍경과 더불어 산성 안의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트이면 마음마저 트이는 법.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크게 둘러보니마음이 차분해진다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수어장대는 전면에서 볼 때 크고 작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기둥을 세우고 내부에는 널마루를 설치하여 단조로운 난간을 둘렀다. 내부 천정에는 장반자를 귀틀 위에 깔아 단청으로 시문하였고 툇간 위의 반자는 연등천정이다. 내진과 외진 사이 바닥에는 전을 깔고 한쪽에 계단을 설치하여 2층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다. 2층은 1층과 달리 변주판문을 달아 열고 닫을수 있게 되어있고,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직접 올라 청나라 군사와 대적하여 군사들을 지휘한 곳이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중의 하나다. 


 

남한산성 주봉인 청량상 정상에 자리한 위풍당당 수어장대.


 

 남한 산성  청량산


 

 청량산 고지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진 수어장대의 위용을 보며, 남한산성 성벽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유적들에 얽힌 이야기를 느낄수 있는 길이다.

 천혜의 요새다운 남한산성의 산세를 따라 걸으면서, 격조 있는 우리 옛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길이다.

 


 서문(우익문右翼門)

서문은 산성 북동쪽에 있는 문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우익문(右翼門)이라 한다.

광나루송파나루에서 가장 가깝지만, 경사가 급하여 당시 물자를 수송하던 우마차 등은 이 문으로 드나들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의 폭은 1.46m이고, 높이는 2.1m다. 



 

병자호란떄   인조가 세자 등과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러 삼전도로 나갈 때, 이 문을 걸어서 지났다.

성문이  낯아 머리를  숙여야 했고, 길이 가팔라 말에서 조차 내려야  했다고 전해진다.

 서문을  나서면서 인조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남한산성 서문.  

 서문 만이 그답을  간직한체  서있고 있는건  아닐런지~~


 

 제5암문  연주봉 옹성가는길


 

 남한산성  그렇게  접한다고  접했는데  사실  이번이 연주봉 옹성은  처음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짧은 거리지만 힐링 하기엔  제격인  장소이다.


 성곽 길을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옹성. 끝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연주봉에서 바라본 수어장대

연주봉(連 珠峰)뜻을  풀이 하니 구술을 연결한  봉우리란다.

연주,연주,연주 불러도 불러도  정겨운  이름이다.


 

 두남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무척 정겨움을  느낀다.

일상 적인  복장에 등산화도 운동화도  아닌  구두를  신고  그만큼 남한산성 길이  편하다는거 아닐까~~



 연주봉  옹성 정상에 서면 서울 시내와 산성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방어 시설이다.


 

 연주봉  옹성에서 바라본  동장대터로 가는 성곾이  마치 용의 몸처럼  꿈틀거림이 장관을 이룬다.

그뒤로  검단산도 보이면서 아픈 가슴을 떨쳐 버리고 제대로  힐링하는것  같다 .


 

 연주봉  옹성 가는 암문앞에 막걸리와  어묵꼬치 파는 곳이 있다.

어묵꼬치2개(2,000원) 막걸리 한사발(2,000원) 점심대신 한잔하고 길을 떠난다.

모락모락 김이 나고  뜨끈 뜨끈 국물과 함꼐 먹는 어묵 꼬치가 이렇게  맛이 있는줄  새삼 느낀 날이다.

물론 MSG냄새는 많이 났지만 ~~


 

 성벽도  이렇게  이쁠수가 있구나.

아니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걸까.

소나무의  울창한 숲들이 성벽을  호위하는 듯  서있고

이리보고  저리 보고  어느 각도에서 봐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남한산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돌을 쌓아 만든 산성으로, 능선의 흐름에 맞춰 산성의 모양도 자연스럽게 펼쳐져 더 없이 아름답다.

특히 산성 좌우에 조성된 울창한 수림들은 검은색 벽돌을 쌓아 만든 여장과 조화를 이루어 사계절 우아한 아취를 자아낸다.


 

 북문(전승문戰勝門)

북문은 성곽 북쪽의 해발 365m 지점에 있으며 전승문(戰勝門)이라고 한다. 북문을 나서면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상사창동으로 이르게 되는데 조선 시대에 수운으로 옮긴 세곡을 등짐으로 이 문을 통해 산성 안으로 운반하였다. 선조대의 기록을 보면 산성 내에 동면과 남문, 수구문의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문은 1624년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북문은  병자 호란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 햇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승리 한다는 뜻에서"전승문"이라고  하였다.

당시 영의 정  김류의  주자에 의해 군사 300여명이북문을  열고 나가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바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  전투"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패전 이였다

1779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이라 칭하였다. '전승문'이란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인데 현재 편액은 걸려있지 않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눈 속에 깊게 묻힌 산성은 고요와 함께 태고적 신비로운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산성기와에  소복히 쌓인 눈은 한층멋들어진  한폭의 그림이다.



  남한산성은 안쪽은 낮고 얕으나 바깥쪽은 높고 험하여서 청이 처음 왔을 때 병기(兵器)라고는 날도 대지 못하였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도 성을 끝내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인조(仁祖)가 성에서 내려온 것은 다만 양식이 적고 강화가 함락된 때문이었다고  한다.



 

 남한산성 길을 걸으면 좋은 소나무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소나무들은 그 예전의 역사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높고 오래되어 보인다.


 

 

 동장대터로  향하면서  뒤돌아본  연주봉 옹성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걸터앉은 눈꽃이 바람이 불적마다 후드득 머리위로 떨어지고 .

터벅터벅 올라가는 산행 길에서 만났던  설경은 덤으로 주어진 귀한 선물이었다. 올라가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암문은 남한산성에 16개가 있으며, 남한산성은 한국 성곽 중에서 가장 많은 암문을 가지고 있다.

 암문은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든 성루가 없는 성문이다. 원성에 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성에 1개가 있고 형식은 평거식과 홍예식으로 구분된다. 암문은 은밀하게 식량과 무기를 운반하거나 원군이나 척후병이 출입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크기가 작고 장식이 없다. 암문의 안쪽에 쌓은 옹벽이나 흙은 유사시에 무너뜨려서 암문을 폐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남한산성 곳곳에 숨겨져 있는 비밀 통로인 암문. 적군의 눈을 피해 이 문으로 군사들이 이동을 하였다. 



 

 미끄럽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동장대터와 봉암성으로 가는  암문이 조망된다.



 동장대터에서 봉암성(벌봉)으로 가는 암문이 보이고~~


  

 봉암성은 남한산성의 원성에 대해 새로 쌓은 성이란 뜻으로 '신성'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동쪽에 있어서 ‘동성’이라고도 하였다. 봉암성의 여장은 대부분 훼손되었지만, 성벽 몸체는 비교적 잘 남아있는 편이다. 성벽은 약 2~3m의 높이만 남아있다. 숙종 31년에 2개의 포루를 증축했다.


남한산성여장:여장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동장대터

동장대 터는 남한산성의 동쪽에 있던 장대로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좌영장이 지휘하던 동장대가 있던 곳이다. 동장대는 인조 2년에 산성 수축시에 설치되었고, 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세기 초에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짓지 않았다. 한봉성과 연주봉옹성의 축성으로 동장대나 북장대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 동장대터에서 중미산,  유명산 ,용문산, 백운봉이 조망된다.



 동장대터에서 장경사신지 옹성으로 가는 좌측에 한봉으로 가는 성곾 여장이 보이고 있다.

그뒤로  검단산과 저멀리 뾰족한  한국의 마터호른 백운봉 ~~


  

 좌측 장경사신지옹성

장경사신지옹성은 그 둘레가 150.9m로 여장(女薔)이 4개,끝머리에 대포穴이 2개소가 있다.이옹성은 暗門을 통하여 안 밖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5개 옹성중 가장 작다.좌측에는 무기고가 있었다고 하고 한봉성과 봉암성 방어를 주목적으로  설치 했다고 한다.

 


 

 동문(좌익문)에서부터 동장대터 까지는 근일년동안 성곽을  보수하고 있다.

성곾바깥쪽으로 흉물????스럽게 보수용 비계가  설치되여져 있다.

일부구간은  통행도  제한되여져 있다.

이왕 보수 하는것 처음 그때 그시절  처음 성곾을  쌓은 그모습 그대로 보수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줬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장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남한산성 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가운데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이다.망월봉 남사면 중턱 해발 360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인조 2년(1624년) 남한산성 수축 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사찰이다. 병자호란 당시인 인조 15년(1637년) 1월 19일 적이 동쪽 성을 침범하여 남한산성이 함몰 위기에 빠지자 어영별장 이기축이 장경사에 있다가 죽을 힘을 다하여 몸소 군사를 독전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진남루, 칠성각, 대방, 요사채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대웅전이 가장 화려하게 지여진 고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이며, 다포양식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측면의 칸은 정면의 칸보다 약간 좁아서 건물의 전체 평면은 장방형을 이룬다. 건물 정면에는 각 칸마다 4쪽 여닫이 교자문을 달았다. 종무소는 좁아서 건물 전체 평면은을 장방향을 이룬다. 건물 정면에는 각 칸마다 4쪽 교자문을 달았다.


 

  동문끝으로 342호 지방도와 산성마을, 그뒤로 수어장대가 보인다.



 산행들머리 동문에서 제3남옹성으로 오르는  성곽이 햇살과 교차하면서 그멋을 더해주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송암정터(松岩亭터)송암정은 우리말의"솔바위 정저"라는 뜻이다.

옛날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남자 여럿이  기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  술에 취한 한사내가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불법을 설파하였다.그때 그무리중 감명을 받은  한기생이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져 자결을 하였는데 그후 달 밝은 밤에는 이곳에서  노래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렸왔다고 한다.

이바위에 서있는 고사목 (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내부"벼슬을 내려"대부송"이라고 부르는 소나무이다

 

 

  햇살이 눈부시게 동문(좌익문)을 비춰준다.

산행  종료시간을  나타내는  풍경이다.

아름다운 남한산성 다시만날날을  고대하자



동문은 가장 사용빈도가 많았던 문으로, 성의 남동쪽에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좌익문(左翼門)이라 하였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이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니, 동문이 좌측이 되므로 좌익문이라 한 것이다.  지면이 성문보다 낮아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 동문은 낮은 지대에 축조되었기 때문에 계단을 쌓고 그 위에 성문을 축조하여 우마차의 통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물자의 수송은 수구문 남쪽에 있는 11암문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행날머리 남한산성 동문


  

 동문 주차장에 오후2시30분 도착

 마음은  괴롭지만 놀며, 쉬며, 추억사진  남기면서 2시간 30분동안의  산행을  마치고  경기도 광주 오포로  출발하면서  남한산성  이야기  여기서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