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2025년 12월 27일(토요일)~12월28일 (일요일)
여행지:태안 파도리 해식동굴,꽃지해수욕장(할배,할매바위),백사장항(대하랑 꽃게랑 인도교), 해미읍성
▼파도리 해식동굴▼

파도리 해식동굴은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 조금 아랫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다.이곳은 삼면이 바다로, 파도소리가 끊이지 않는데서 파도리라 하였다고도 하고,거센 파도로 인해서 난파를 당하는 배들이 많아 도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태안의 유명한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 천혜의 바다가 펼쳐진 파도리 해수욕장! 파도리 해수욕장을 유명하게 만든 이유는 바로 숨겨진 사진 명소, 파도리 해식 동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도리 해식 동굴은 아무 때나 관람하기는 어려운 곳이다.파도리 해식 동굴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러 가시기 전에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바로 파도리 해수욕장의 물때이다.. 파도리 해식 동굴은 만조 시 물이 가득 차면 출입이 제한되어 사진을 남길 수 없거나 고립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꼭 간조 시각을 확인하고 방문하자.

파도리 해수욕장에서 파도리 해식 동굴까지 가는 길은 조금 멀거니와 갯바위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고 날카롭기 때문에 신발을 꼭 착용하고 걸어가야 한다.

바다를 등지고 뒤를 돌아보면 멋들어진 기암절벽과 함께 파도리 해식 동굴이 놓여 있다. 긴 세월에 거쳐 파도가 빚어낸 파도리 해수욕장만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파도리 해수욕장엔 파도로 인해 생겨난 여러 침식 지형들을 볼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여도 좋은 곳이다.

파도리 해수욕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파도리 해식 동굴이다. 수많은 방문객들이 이곳 파도리 해수욕장을 방문하여 파도리 해식 동굴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간다. 겨울 바다와 함께 파도리 해식동굴을 방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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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 해수욕장 할배, 할미바위▼

충남 태안군 안면읍 광지길에 자리한 꽃지해변은 5㎞에 이르는 백사장과 할배바위, 할매바위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을 보여준다. 2개의 바위 너머로 붉게 물드는 낙조는 태안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풍광 중 으뜸으로 꼽힌다.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지’라는 어여쁜 이름을 얻었다. 긴 백사장을 따라 걷거나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과 가족의 모습도 꽃지해변의 풍경이 된다~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꽃지해변을 상징하는 두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안면도에 기지를 두었는데, 기지사령관이었던 승언과 아내 미도의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출정 나간 승언은 돌아오지 않았고, 바다만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던 미도는 죽어서 할매바위가 되었다. 할매바위보다 조금 더 바다 쪽으로 나간 곳에 있는 큰 바위는 자연스레 할배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바다로 나간 남편을 맞이하듯 마주 선 두 바위가 애틋해 보인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썰물 때면 두 바위가 마치 한 몸인 듯 모래톱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여름뿐 아니라 사계절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바위와 어우러진 낙조 때문이다. 해질 무렵이면 할매바위, 할배바위 너머로 아름답게 물드는 일몰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진풍경을 펼친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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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장항 대하랑 꽃게랑 인도교▼

서해안의 황금빛 태양이 있는곳!
가족과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과
행복한 여정이 쉬어가는 곳!
백사장과 드르니를 잇는
낭만의 장소에 우리는 서있네.
대하랑 꽃게랑 인도교 위에서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을 잇는 ‘대하랑 꽃게랑’ 인도교. 다리의 난간은 파도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발 아래로 고깃배가 오가고, 물 위에는 갈매기가 낮게 날았다. 다리 위에선 두 항구가 동시에 보인다. 뒤쪽으론 붉은 지붕의 백사장항, 앞쪽으론 조용한 드르니항이 있다.

안면읍 창기리에 있는 어항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포구 주변으로 횟집들이 바다를 둘러싸듯이 자리 잡고 있으며, 포구 옆으로는 백사장해수욕장이 있다. 포구 앞으로는 소규모의 어선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 해안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주로 우럭, 노래미, 농어, 대하 등의 어종이 잡히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대하이다. 해마다 9월 말~11월 초에 대하축제가 열리는데, 전국 각지에서 이곳 대하를 맛보기 위하여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드르니항은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에 위치한 작은 어항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온항’으로 불렸으며, 2003년부터는 우리말 ‘들른다’를 활용해 ‘드르니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항구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연중 낚시객들로 붐비는 명소이다. 주꾸미, 노래미, 우럭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며, 특히 가을철 주꾸미 낚시로 유명하다.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고 드르니항에서는 태안의 상징적인 구조물인 꽃게 다리를 조망할 수 있어 경관 또한 뛰어나다. 밤에 항구에서 꽃게다리의 야경도 함께 볼 수 있어 데이트 장소로도 좋다.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 속에서 바다와 낚시, 경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태안의 숨은 명소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태안 꽃게다리는 태안 드르니항에서 안면도 백사장항까지 걸쳐 있는 꽃게를 닮은 다리이다. 드르니항과 안면도 백사장항을 잇는 해상인도교 꽃게다리는 드르니항쪽 다리 입구에는 꽃게, 백사장항쪽에는 새우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꽃게와 새우가 많이 잡힌다는 것을 상징하며 과거에는 대하랑꽃게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우리말로 들르다라는 뜻의 드르니항은 고깃배도 몇 척, 식당도 서너 군데로 아담한 항구이다. 그에 비해 안면도 백사장항은 고깃배도 셀 수 없이 많고, 수협공판장에선 수산물 판매도 많이 이뤄진다. 다리 위에서 보는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고 바다 위를 걷는 신비함이 더해서 사진찍기 좋은 명소이다. 일몰 무렵과 조명이 들어오는 저녁에 방문하면 더욱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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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일요일 ▼충남 서산 해미읍성▼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 높이 5m, 총면적 196,381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 남, 서의 세 문루가 있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 때에는 1천여 명이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감옥 입구에 서 있는 300년 된 나무로, 이 나무의 가지에 신자들이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 고문하였었고, 그 흔적으로 철사 줄이 박혀있다. 바로 성문 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읍성의 남쪽으로 통하는 정문으로, 화강석 홍예문 위에 정면3칸 ,측면2칸의 문루로 조성되여져 있다.






해미읍성은 한국 천주교의 성지이기도 하며, 한반도 내의 모든 성지 중 유일하게 성좌가 승인한 국제성지로 현재 한국 천주교 순교성지 중에서는 가장 격이 높다.천주교 대전교구 관할이다.박해시기에 1,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잡혀와 고문당하고 순교한 곳인데, 하도 많은 사람들이 잡힌 까닭에 감옥도 모자라서 감옥 앞의 사진 속 회화나무에서 집행했다고 한다. 지역에서는 '호야나무'라고 불리는 그 회화나무에는 철사를 맨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이 나무는 충청남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935년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를 토대로 복원했으며,1790년부터 100여년간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 투옥하였다.


조선시대 민가로 말단관리인 서리의 집이다. 부억1칸, 방2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3칸 초가집이다. ㅡ자형 평면구성은 우리 나라 농촌민가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 되는 공간 배치로서 부엌과 방들이 일렬로 연속 배치되어 있다. 모든방이 남쪽으로 출입구를 두어 쾌적한 생활공간이 되도록 하고 있다. 방에 갖춘 간단한 문구류가 집 주인의 직업을 말해준다.

조선시대 민가로 상인의 집을 재현하였다. 대들보 아래의 방을 일렬로 배치한 홑집 즉 단일형 가옥으로, 우리나라 서부와 남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조선 후기 민가의 보편적 형태이다. 이 지역 민가들은 일반적으로 몸채를 ㅡ자형으로 하고 광,외양간,측간 등을 하나로 묶어 부속채를 구성한다. 이가옥 역시 부엌1칸,방2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3칸 초가이며 부속채가 딸려있다. 장사가 주업이지만 텃밭 경작을 위한 기본적인 농기구를 갖추었다.


조선시대 민가로 부농의 집을 재현 하였다.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민가로서 대청이 없는것이 특징인데, 이런 ㄱ자형의 가옥은 ㅡ자형 가옥의 기본 평면에서 발전된 것으로, 부엌1칸, 방 1칸의 기본적이 생활공간의 형태로 필요에 따라 칸이 덧붙여져 확대된 것이다.이 가옥은 부유한 농가로 각종 농기구와 농산물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부속채가 딸려 있는데 부속 건물을 마당 한쪽에 치우쳐 지어 농경 작업을 위한 마당의 공간 활용을 높였다.



해미는 서해안을 방어하는 중요한 지역이었기에 충청도 5진영 중 하나인 호서진영(湖西左營) 을 두었으며,햄미현을 병영으로 옮겨 현감(縣監)과 영장(營將)을 겸하게 하는 겸영장제(兼營將制)를 실시하여 1914년까지 호서좌영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동헌(東軒)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비롯한 현감겸영장(縣監兼營奬)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군,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討捕使)를겸한 지위였다.

여기 돌계단을 하나, 둘 오르면 소나무 그늘이 기득 펼쳐진 곳에 고풍스러운 정자 청허정(淸虛亭)이 나타 나는데, 정자 바로 아래까지 모두 108개의 계단을 만나게 된다.

1491년 (성종22) 충청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지은 청허정은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병사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활을 쏘며 무예를 익혔고, 문객들은 시를 짓고 글을 남겼다.







객관이라고도 하며,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 조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지방관리들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객사에 모시고 초 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절을 올리는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

성내의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官舍)로 살림집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벽. 크고 작은 돌들과 아름다운 누각 이 곳 서산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천주교 박해의 아픔도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임니다.
♧참 고마웠슴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도 며칠밖에 안 남았내요,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한 새해맞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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