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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

강원도 고성 여행기

여행일:2020년12월 6~7일 (일요일, 월요일)

여행지:강원도 고성(통일 전망대,DMZ박물관,화진포이승만,이기붕,김일성별장,백도 전망대,거진항,송지호 관광 전망대)

 

 

고성군은 백두대간과 동해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지형으로 긴 해안과 산악분포가 특징이며 특히 금강산과 설악산 등 빼어난 산세와 검푸른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통일 전망대 출입신고서♥

통일 전망대는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자가용 이용 기준) 통일전망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에 있는 출입신고소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한다. 출입신청서 작성한후 차량등록 및 입장료 결제이후에  발급받은  팔찌를 차고 자신이 타고온 자가용으로 통일 전망대로 향한다.  민통선 검문소에 출입신고서를 제출한 뒤 민통선차량출입증을 받아 차량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이 때부터 블랙박스 전원을 끄도록 요구되며 출입신고서에서 작성한 방문 인원과 동일 한지 차량 내부와 트렁크의 수색이 이루어진다.통일 전망대에 도착하면 관람 및 귀가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개별적으로 자유롭게 하며 나갈때는 민통선차량출입증 반납, 인원수 확인만 하고 자유롭게 나갈수있다

 

 

 

 

♥통일 전망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위치한   고성통일 전망대는 파주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더불어 상당히 유명한 통일전망대다. 민간인이 관광 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휴전선 이남 대한민국 최북단 지역이다. 2018년 12월 25일 기존 전망대 건물 좌측에 고성통일전망대가 개장했다.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오륙도 부터 시작해 한반도  동해안을  종단하는 대한민국 최장의  걷기여행길인 해파랑길의 종점이다.

 

 

 

 

 

▲장승에게 통일의 길을 묻다▲

장승에 새긴 배자는 사극에서 대필작가로 유명한 송민 이주형 선생 작품으로 장승은 이한수 장승조각 명장이 제작

장승은 재앙과 악귀를 막고 소망을 하늘에 전하려 했던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이자 마을 공동체를 지켜온 수호신으로 현재 우리 민족이 당면한 평화통일 염원을 장승을 통해 갈구하고 통일 의지와 분위기를 전국민에게 확산 . 2019년 4월14일 청양칠갑산장승축제에서  청양칠갑산대장군과 고성금강산 여장군의 장승 혼례를 진행. 2019년 10월31일 고성통일 전망대에서 고성금강산대장군과 청양칠갑산여장군의 장승혼례를 "통일기원 장승대재"로 진행

 

 

 

 

▲고성지역 전투 충혼탑▲

강원도 고성은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새로운 안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고성군이 대표적인 안보관광지로 부각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통일 전망대이며,이 통일전망대의 상징이 바로 이 곳 충헌탑이다. 이충혼 탑은 6.25전쟁 이후 고성지역에서 조국과 겨례를 수호하기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이 분들의 충정과 거룩한 뜻을 기리고자 육군 제5861부대와 고성군이 함께 건립한 추모탑이다. 이충혼탑은 관람객분들에게는 조국통일의 의지와 나라사랑의 마음을 키울수 있는 신성한 학습장이며 ,외국인들에게는 대한민국분단의아픔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이를 그복한 대한민국의 상무.호국 정신을 이해하게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한편 소성군 건봉사에는 6.25전쟁 당시 순직자 1,064명과 사단 창설이후 순직자 194명의 추모를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고성 8경 통일 전망대▲

고성군 현내면 저진리에 위치한 DMZ와 남방 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 고지의 통일 전망대는  금강산의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보이고,맑은 날에는신선대,옥녀봉,채하봉,일출봉,집선봉 등천하절경 금강산을 볼수 있다. 휴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최전방 초소는전쟁의 아픔과 남북분단의현실을 피부로느낄 수 있으며,발아래에는동해 북부선 철도길을 잇는공사장면과2004년12월 개통된 동해선 남북연결 도로로금강산 육로관광이  이루워지는 모습을 볼수있어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꿈꾸게 된다.

 

 

 

 

 

함경도 실향민들이 명절에 고향 대신 이 곳 통일 전망대를 찾는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땅▲

 

 

 

▲351고지 전투전적비▲

동해안 요충지인 월비산(459고지),208고지,351고지의 피.아 공방전은 1951년 7월15일부터 1953년 7월18일 까지 계속되었으며,개전 이래 수십 차레에 걸쳐 국군 제 5.11.15.수도사단과 북한군 6.7.19사단은 월비산,208고지,351고지를 뺏고,뺏기기를 반복하다가 1953년7월27일 휴전협정으로 인하여 피.아 전투가 종식되었다. 이비는 휴전되기까지 동해안의 요충지인 351고지를 확보하기위해 목숨을 바쳐 참전한 장병들의 전공을 기리고,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후대에 그 위혼을 전하고자 1957년7월15일 제3군단에서 현내면 대진리에 건립, 관리하여 오던중,1988년12월26일 통일전망대가 설치되어,그날의 격전지가 직접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이전하여 8군단에서 관리하였고,2020년 통일전망대 리모델링 공사에 따라 국군의 합동작전을 통한 국토방위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공군 전투전적비가 있는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통일 전망대 에는 기차 식당과 커피 샾이 있다. 1박2일 촬영 장소 라고 한다.

민간인이 대한민국에서 커피를 마시고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수 있는 마지막 장소가  이곳 기차 식당이 아닌가 싶다.

 

 

 

 

♥6.25전쟁체험 전시관♥

통일전망대 내 6.25 전쟁체험 전시관은 6.25 당시 전쟁의 참상과 당시 상황을 사진과 영상, 자료와 유물 등을 통해 현실감있게 간접체험해 볼 수 있어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사진으로 보는 6.25는 해방과 남. 북한 독자 정부수립을 거쳐 전쟁의 발발, 진행 경과 그리고 휴전선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을 생생한 영상자료를 통해 확인하면서 6.25전쟁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게 꾸며져 있었으며 영상체험실에서는 6.25전쟁의 비극적이고 참혹한 순간을 재연하여 전쟁의 한 복판에 있는 듯한 실감 체험을 통해 전쟁에 대한 경각심과 평화의 소중함을 영상을 통해 느낄 수 있다

 

 

 

  

 

 

 

♥DMZ 박물관♥

▲평화의 날개▲

남과 북이 서로 "손을 맞잡고"소통과 화합을 통해 '평화 통일을 이룬다'는 컨셉으로 제작.

 

 

▲DMZ박물관▲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세계 유일의 DMZ 관련 박물관.

디엠제트(DMZ)는 무장이 금지된 지역, 즉 군사 시설이 없고 군사적 행동이 금지된 비무장 지대를 말한다. DMZ은 남한과 북한이 휴전하면서 전쟁을 막기 위해 만든 곳이다. 비무장 지대는 출입이 제한적인 구역이었기 때문에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자연 생태계 연구 대상이 되기도한다.

 

 

 

DMZ박물관은 남북한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전 국민의 염원을 담아 동해안 최북단인 군사분계선과 근접한 민통선 내에 있다.설립 목적은 남북한 분단의 현장을 안보, 평화, 관광 거점 지역으로 중점 육성하고 미래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비무장지대(DMZ)를 세계적인 역사문화의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함이다.

 

 

 

▲DMZ 전시관▲

지구 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의 상징인 DMZ를 통하여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후 모습과, 휴전협정으로 탄생한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 이로 인해 나타난 동족 간 이산의 아픔, 지속되는 군사적인 충돌, 60여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태환경 등을 전시물이나 영상물로 재구성하였다.전시공간은 축복받지 못한 탄생, 냉전의 유산은 이어지다, 그러나 DMZ는 살아 있다, 다시 꿈꾸는 땅 DMZ, DMZ 영상실 등으로 나뉜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에는 냉전이 낳은 비극, 민족 분단의 비극 등이 전시되고 있다.

 

 

 

▲통일전망대DMZ 박물관▲

2006년 3월 남북관광교류타운으로 공사를 착공했으나, 2008년 12월 강원도 DMZ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09년 8월 14일 개관했다.개관시간은 하절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동절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이승만 대통령 별장▲

이승만 대통령이 부인과 함께 수시로 찿았던 별장으로 1954년에 건립되었다.1961년부터 방치되었던 것을 1997년 7월 육군이 재건축하여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 하였다. 단층 석조 건물로면적은 89.25m²이다. 집무실,침실,거실을 재현하였으며, 이승만 부부가 사용한 침대,낚시도구,의복,안경,장갑,여권,편지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을 전시하고 있다. 별장 뒤에는 친필휘호,의복,소품,도서등을 전시해 놓은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 있다.1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화진포의 성9김일성 별장). 이기붕별장과 함게 역사 안보 전시관을 이루고 있다.

▲전시관▲

 

 

▲화진포 별장의 유래▲

이곳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죽정리에 있는 화진포(花津浦) 는 바다의 일부가 외해(外海)와 분리된 석호(潟湖)로 자연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동해안의 명승지로 알려져 1900년대 초부터 외국인의 별장이 있어 왔다.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李承晩)박사는 조선왕조말 1904년에 구국의 밀사로 미국에 갔다가1910년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 YMCA의 학감으로 국민 계몽과 교육에 힘쓰면서 1911년에전국순회 전도 여행 중 이 곳 외국인 선교사 별장에 둘러 친교를 맺은 일이 있었다,그러나 일제가 105인 사건을 계기로 이 박사를 체포하려 들자 1912년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1945년에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3년간의 건국투쟁 끝에 현대국가의 창업을 이룩하였다.그후 1950년 6월25일에 남침한 공산군을 우리 국군이 물리쳐 고성군을 수복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군민을 격려하며 이곳을 사찰한 것은 1953년 11월 8일 이었으니 그에겐 실로 42년만의 감격적인 방문이었다. 이때 이대통령은 김동석(金東石)방첩대장의 안내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이 별장을 찿아 휴양지로 정해 동해안의 군사적 요지인 이곳에서 낚시도 하고 자연을 즐기면서 남북통일을 구상 하였다,

이별장은 1954년 위쪽의 기념관 자리에 단층건물(스라브 27평)로 신축되었으나 1960년 후 방치철거되었던 것을 1999년 7월 육군에서 본래 모습대로 현 위치에 복원하여 이 대통령의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해 오다가 2007년 2월에 고성군과 육군복지재단에서 위쪽의 육군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보수하여 2007년 7월에 이승만 대통령 기년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

기념관 검물의 유래:본 건물은 1954년 ,27평ㅇ 규모로 신축하여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의별장으로 사용했으나,이후 건물을 방치하여 폐허로 철거 되었던 것을 새로 지어 육군관사로 사용해 왔다.그 후 1997년 7월,육군에서는 현재의 위치에 본래의 모습대로 별장 건물을 복원하녀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해 오다가 2007년2월에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본래의 별장터에 세워진 본 건물을 보수하고 별장에 있던 일부 유물과 이화장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추가로 기증 받아 2007년8월,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화진포 호수▲

화진포는 바다와 접해있는 호수로서 면적은 2.3㎢, 둘레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석호로 널리 알려져 잇다. 호수 주위에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려쌓여 자연풍광이 아름답고,바다의 기암괴석은 태고의 신비스런 자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얕은 수심과 쪽빛바다,수천년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화진포의 백사장은 모래빛이 하얗고 감촉이 부드러운 명사(鳴砂)로 연중많은 피서객이 찿는 동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또한 호수의 바닷물이 교차하여 연어, 숭어,도미등 갖가지 담수어종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호수의 빼어난 경치에 심취하여 죽정(竹亭),모연(募煙),풍암(風岩),귀범(歸帆),장평(長坪),낙안(落雁),가평(加平),야종(夜種)을 방랑시인 김삿갓은 화진팔경(花津八景)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화진포 설화▲

옛날 이 마을 "이화진' 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주위 사랍들에게 너부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했다.어느날 스님이 시주를 왔는데 곡식대신 소똥을 퍼주었고 스님은 소똥을 들고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며느리가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나를 따라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말라"고 했는데 며느리는 고총고개에 이르러 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보니 이화진이 살던 집과 전,답 모두 물에 잠겨 호수가 되어 있었다. 며느리는 애통해하다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마을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이후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는 이화진의 화진에서 유래되었다.이 설화를 형상화 한 "화진포설화 여인상 동상'이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아래 호수가에 세워져 있다.

 

 

 

화진포는 1991년에 국민관광휴양지로 지정되어 동해안의 대표적인 국민관광지로 조성되여져 있다.

 

 

 

 

화진포 앞바다에 미래를 예지하는 십장 생거북을 닮은 거북섬(금구도)를 바라다 보며 소원을 빌면 소원 성취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광개토대왕릉▲

화진포 앞바다의 섬으로 보이는 거북이 형상의 금구도가 광개토대왕릉 이라는 자료가 발션되어 학게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구려 연대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3년(서기394년)8월경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릉(王陵)축조를 시작했으며,광개토 대왕 18년 8월에 화진포의 수릉축조 현장을 대왕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그리고, 광개토 대왕이 서거한 이듬해인 장수왕2년(서기414년)9월29일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광개토대왕릉 수비대가 왕릉을 지키고 있었고 ,계림(신라)의 군사와 수비대의 잦은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며,문자명왕 2년에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망제(望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있는 거북섬 성의 구조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섬의 정상부인 약45m높이의 고지를 중심에 두고 해안선의 자연 지형을 따라 화강암을 이용하여 석축으로 축조하고, 성벽상단은 삭토하여 환도를 개설한 흔적이 200m가량 뚜렷이 남아 있으며,산정부근의 와편과 주초석의 잔해는 사당으로 추정하고 있다.섬 북쪽의 암석 저지대는 잔돌끼움 쌓기의 협축법으로 석축한 보호벽(城)과  방파성(防波城)이 약60m,높이170~230Cm,3개 구간에 남아잇다.고성군에서는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관계전문가의 고증을 통해 사실이 확인되면 원형 복원할 계획으로 있다.

 

 

▲고성군 특산물 명태 조형물▲

조선시대 함경북도 명천(明川)의 태씨성을 가진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관찰사에게 반찬으로 내놓았는데, 그 물고기의 이름을 몰라 명태라고 지어주었다고 한다. 어린 개체는 노가리라 부른다. 반건조한 명태는 코다리, 하얗게 말린 명태는 백태(白太)라고 한다.명태는 동해에서 27만 톤 이상 잡힐만큼 1940년에 한국에서 가장 흔한 물고기였다. 그러나, 명태의 새끼인 노가리 남획과  지구 온난화로 한국은 명태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랑의 열쇠 조형물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은 외국인 선교사 셔우드 홀이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김일성은 1948년부터 0년까지 처 김정숙,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등 가족과 함게 하계휴양지로 화진포의 성을 찿았다,48년 8월당시 6살이던 김정일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화진포의 성의 절경중 금구도라 불리는 바위섬은 화진포 해변에서 300여m 떨어진 금구도는 거북 모양을 닮은데다 가을철이면 이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 노랗게 변해 섬 전체가 황금빛을 띤다.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은 한국 전쟁 이전에 북한지역으로써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하였다.1948년 부터 6.25남침 이전까지는 김일성과 그의 가족들이 하계휴양을 했던 곳으로써 당시 지상2층 ,지하1층 건물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964년 육군에서 훼손된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 하였으며, 1995년 육군복지단에서 개.보수하여 장병휴양시설로 운연하여 오다가 1999년 7월 육군에서 기존의 건물을 용도변경, 개수하여 역사안보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제1전시실
제2전시실

화진포의 성 내부에는 제1전시실 에는 "2대에 걸친 헌신"을 알려주는 "셔우드 홀"의 전시관과 김일성의 정체와 독재체제 구축과정을 비롯하여 한국전쟁 도발과,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도발만행 등 북한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제2전시실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비핵화 등과 관련한 화해 무드와 근자의 동향 등을 알려주고 있으며,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 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물로 만들어져 전시 되었다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으며,독일 건축가인 H.Weber가 1938년 건립하여 예베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해안 절벽 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城)"으로 불리워 졌으며,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이 처 김정숙,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잇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

화진포는 동해와 연접해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광활한 호수 주위에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펼쳐진 국내 최고의 석호이다.해변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을뿐만 아니라 금구도(섬)가 절경을 이루어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1970년대

부터 겨울 철새이면서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와 청둥오리등 철새가 많이 날아와 호수 일대에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초도리앞 500m 해상에는 3,300m²의 금구도(金龜島라 붙여진 이곳은 신라시대 수군의 기지로 사용하던 곳으로 섬의 북쪽에 석축 일부가 남아 있고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섬의 중심 부에서 와편과 주춧돌이 1997년 4월 문화재 연구소 학술 조사반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

송림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철새도래지 화진포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와현내면 초도리, 죽정리에 연접한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으로 둘레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 호수이다.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이 빼어나 예로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이 많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별장과 이0기붕 별장,화진포의성(김일성 별장)이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기붕 부통령 별장▼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이후 부통령아었던이기붕씨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다가 폐쇄되었으나 199년 7월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다.

 

 

 

▲화진포 호수 금강소나무 숲▲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소나무숲과 호수,그리고 바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진 화진포(花津浦)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다.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여있다.100년이상 된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과 호수, 그리고 고운 모래밭과 푸른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누구나 다시 찿고 싶을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백섬 해상 전망대▼

▲백섬의 유래▲

거진 뒷장에 위치한 백섬은 예전에는 잔돌이 많아 '잔철'로 불리다가 이중 제일 큰 바위가 갈매기 배설물로 하얗게 보인다 하여 지금의 "백섬" 이 되었다. 백섬은 해안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무수히 많은 바위들로 사람들이 들어가기 힘들었는데 "일제강점기 인근 마을에 살던 일본인들이 패전 소식을 미리 듣고 안전한 탈출을 위해 이 곳 주민들을 몰살 시키려고 하였으나 이를 눈치챈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위기를 모면 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거진항♥

거진항(巨津港)

한자 클 거(巨)의 생김새와 비슷한 산세를 지녀 큰 나루라 불린 거진, 거진항의 유래가 바로 이것이다

구조상 동방파제와 서방파제로 둘러싸여 있어 선박의 피항지로 적합하다.

 명태,도루묵,문어,광어,전복,해삼,멍게 등이 많이 잡힌다. 거진항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수산물은 명태로

매년 명태축제가 열리며, 항을 따라 펼쳐진 명태덕장은 해질 무렵 노을 비치는 바다의 풍치와 어울린다

 

 

 

 

▲거진항을 대표하는 명태 조형물▲

강원도 최북단 고성은 국내 최고의 명태 어장을 가졌던 명태의 고향이다.1980년대 까지 성황이 이어지며, ‘거진항에는 거지가 없다’는 말까지 있을 만큼 부촌을 이루었다. 오늘날까지도 고성의 대표 어항 중 하나로, 전국 명태 어획량의 약 60퍼센트를 출하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무분별한 남획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명태의 주산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지만 명태가 잡히지 않았다고 명태의고장이란 명성을 비릴 수 없는 노릇,고성에는 옛 명성을 되찾기위해 고군분투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북어를 만드는 덕장은 명태 어업 1번지였던 고성의 겨울에 여유로움과 기분 좋은 맛까지 안겨주는 존재가 되었다.

 

 

 

 

▲흰 등대와 방파제, 항구의 매력을 그대로 지닌 거진항 풍경▲

전통방식 그대로 해양 심층수와 해풍으로 말린 북어로 유명한 '명태,' 늦은 가을이면 국내 최고 명태 황금어장인 고성에서 명태축제가 열린다.고성명태 축제는 강원도 고성군의 특산물인 명태를 주제로 펼쳐지는 지역 축제로, 명태와 어촌문화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명태의 풍어와 안전한 조업을 기원하기 위하여 매년 고성군에서 주최하고 있다.

 

 

 

 커다랗고 흰 등대가 동해바다를 향해 서있는 곳은 바다 풍경과 더불어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은 곳. 

  거진항 앞에 있는 빨간 등대와  깨끗한 바닷물이 어울려 호젓한 풍경이 일품이며  깜찍한 볼거리다.

 

 

 

▲거진해수욕장▲

화진포 해변에서 남으로 3km 정도 떨어진 거진해수욕장은모래 질이 좋고, 경사도 대체로 느린 편이며 통일전망대가 가까이 있고  깨끗하고 조용해 여름피서지로 인기가 높다.매년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운영되는데, 이곳에서는 거진항 포구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다. 

 

 

 

 

♥송지호 관망 타워♥

▲송지호 관망 타워▲

지상 4층, 면적 278.47㎡ 규모의 관망타워 형태로 건립하였으며, 송지호에 날아드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어 훌륭한 자연생태학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총 89종 240여 점의 박제를 전시한 조류박제전시관, 송지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외전망대,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타워 등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가 송지호로 날아오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2004년 착공하여 2007년 7월 5일 개관하였다. 송지호는 바다와 연결된 담수호로 총 둘레 6.5km, 면적 약 20만 평 규모이며, 어족이 풍부하여 고니 등 철새의 도래지로 유명하다. 주변에 송지호해수욕장과 왕곡마을, 오토캠핑장, 해양심층수단지 등 다양한 명소가 있다.

 

 

 

1층의 안내 데스크를 지나 2층으로 오르면 건물의 속은 자연의 그 모습을 꾸며져 있다.그리고 수십종의 철새들이 박제 되어 전시 되여져 있다. 비록 박제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새들을 사진속이 아닌 직접 모두 볼 수 있다 사실만 해도 색다른 경험이다.자연소리와 새 지저귐 소리를  들으며 3층으로 오르면 옥외 전시장으로 역시 박제가 되어 있고 상세한 설명과 함께 대표적인 철새들을 전시해 놓았다.4층 타워에 오르고 나면 북으로 공현진의 바다가 그리고 옆으로 내려오면 죽도를 지나 송지호 해수욕장과 오호항을 지나 봉수대 해수욕장과 삼포 해수욕장이 조망된다.반대로 돌아서면 송지호의 모습과 아른한 왕곡마을의 방향, 그리고 두백산의 모습이  조망 된다

 

 

 

 

 

▲죽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산 1번지에 위치해 있는 해상 죽도(竹島)섬은 큰섬과 작은섬(북쪽)사이의 20여m(수심8m예측)되는 섬과 바다가 떨어져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 져 있으나 송지호 전망대에서 보면  한 개 의 섬으로 보인다. 이 두개의 섬이 2019년  1월 중순경부터 모래톱이 쌓이기 시작해 현재에는 육지의 모래백사장과 섬 사이가 모세 현상이 일어나 파도가 없는 날에는 섬으로 그냥 걸어서 건너 갈수가 있어 이 풍경을 보기위하여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왕곡마을▲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 왕곡마을은 해안에서 내륙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으며 석호인 송지호(둘레 4km, 넓이 20만평)와 해발 200m 내외의 봉우리 형태인 야산 다섯 개에 둘러 쌓여 외부와 차단된 '골' 형태의 분지를 이룬다.

송지호에서 왕곡마을을 바라보면 유선형의 배가 동해바다와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 이러한 방주형의 길지는 물에 떠 있는 배형국이어서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한때 마을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전한다. 우물이 없었던 시기에는 샘물을 이용하였고, 근대에 와서는 우물을 사용하였다.

 

 

 

 

 

▲송호정▲.

 송지호 둘레 6.5km 중 중간정도 지점인 오봉리 산167번지 용소두봉에 위치한 송호정은 1959년 당시 면장 최장길, 기성회장 이원섭 등 독지가가 건립하였으며, 송지호의 주변 송림과 호수 동해의 망망대해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송지호(松池湖)

호수둘레 6.5㎞이며,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맑은 호수와 주위의 울창한 해송림이 어울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도미·전어 같은 바닷물고기와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하며, 낚시터로 유명하다. 백조(천연기념물 제201호)의 도래지이기도 하다.전설에 의하면 약 1,500년 전 지금의 송지호 자리는 정거재(鄭巨載)라는 사람의 문전옥답(門前沃畓)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늙은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자 화가 난 노승이 토지 중앙부에 쇠절구를 던지고 사라졌는데, 쇠절구에서 계속 물이 솟아나 호수가 생겼다고 한다.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송지호는 넓은 사빈(砂濱: 모래가 깔려있는 바닷가 땅)이 있어 해수욕장과 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의 경치는 맑은 물과 소나무 숲이 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송지호를 잠시 바라보고 애마와 함께 서울로 발걸음을 향하며 고성여행기 여기서 마침니다.